서울여대에 ‘삼각 숲’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한번은 그 삼각 숲을 산책하다가 믿지 않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생활이 엉망진창인 사람이 많아요. 반면에 교회에는 안 다니지만 착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은 구원해 주시고, 착한 데도 교회에 안 다닌다고 구원하시지 않으면 그게 무슨 공평한 하나님인가요? 저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고 싶지 않아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착한 사람을 구원해 주는 건 좋은 것 같구나. 그런데 네게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얼마나 착해야 착한 걸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10만 원을 떼어먹었을 때 화내지 않는 것이 착한 걸까? 그 기준이 궁금해. 10만원을 기준으로 정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9만 9천 원짜리는 너무 억울할 것 같구나. 두 번째는 내가 보니까 착한 사람은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좋은 친구들과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 같아.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 그 누가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겠니? 하지만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그러니 사람의 성격이나 교양에 따라서 구원해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평한 것 같구나.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고 말해. 네가 믿음의 자세만 가지면 하나님은 물 붓듯 은혜를 부어 주시지. 네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든지, 네 인격이 어떻게 망쳐졌든지 간에 믿음의 자세로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의 은혜가 네게 임하는 거란다.” [@'축복을 유통하는 삶', 장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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