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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그 일은 지하철 안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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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이지 열등감 쟁이었어.
열등감 공장에서 나온 벽돌로 지은 집 같았지.
난 마흔 넘어 나를 낳은 엄마가 할머니인 게 싫었구
시골 태생인 것두 싫었구
말주변 없는 것두 싫었구
사교성 없는 성격도 싫었구
...싫었구.
...싫었구.
...싫었구.
죄다 싫었다니까.
못난 걸로만 구성된 내가 정말 싫었다니까.

난 나를 미워하며 살았어.
내가 미운 게 힘들어서 나 아닌 척 하면서도 살았어.
그런 나를 눈치 챈 사람과는 끝장을 내면서......

내가 설 땅은 점점 줄어들었지.
나중엔 옴짝달싹도 못할 만큼 좁아졌어.
으으윽, 못살겠다,
내 안에 있는 내가 비명을 지르는데
밖에 있는 나는 우아하고 고상한 미소로 방벽을 쌓느라 바빴어.

이상한 꿈을 꾼 건 그 무렵이야.
때는 오월이고 나는 큰 강가의 둑 위에 서 있었어.
바람결에 푸른 풀들이 살랑살랑 춤추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 위에는 햇볕이 눈부시게 빛나고
그 강물은 먹어도 될 만큼 깨끗하게 보였지.
나는 둑을 내려가서 하얗게 빛나는 조약돌을 밟고 강가로 갔어.
강물에 손을 담그는 순간 못 볼 것을 보았단다.
그 강물 속에 글쎄 온갖 잡동사니들이 다 가라앉아 있지 뭐야.
"에이, 속았잖아."
실망한 나는 강가를 떠나다가 또 실망스런 걸 보았어.
조약돌 위에 썩고 있는 커다란 가오리 한 마리.
나는 가오리의 꼬리를 손가락 끝으로 잡아서는
강물 속으로 던지려다 멈칫했지.
떠내려가지 않고 또 가라앉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든 거지.
"땅 속에 들어가서 거름이 되어라."
나는 그 가오리를 둑 너머 멀리 던져 버리고 잠이 깨었단다.

잊혀지지 않는 그 꿈이 무슨 꿈인지
한 달이나 애 쓴 끝에 겨우 알았지.
그건 바로 내 모습이었던 거야.
겉 사람은 오월 훈풍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속 사람은 온갖 잡동사니 더러운 쓰레기통 같은......

내가 아무리 열등감 쟁이라도
나는 나를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나만큼만 양심적으로 살라그래 하며
남들을 도매금으로 싸잡아 버렸는데
으악, 내 속이 더러운 쓰레기통이라니!
난 정말 인정하기 싫었어.
그렇지만 양심은 더 이상 속아주지 않았지.
참고 삭였던 모든 것,
그것들이 흘러가 없어진 게 아니고
마음 바닥에 다 가라앉아 있는 거라고
무거워 죽겠다고
나한테 소리를 벅벅 질러댔으니까.

잡동사니 쓰레기통! 맞아요, 맞다고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난 주님에게 항의를 했어.
그런데 주님은 왜 약속을 안 지켜요?
주님한테 오면 쉬게 해 준다고 그랬잖아요.
언제 그 약속 지키실 거예요?
주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어.
아마 하셨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는지도 몰라.
그때는 주님 목소리를 몰랐거든.

그 일이 일어난 건 그러고 나서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였어.
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
지하철 안은 한산했지만 빈자리가 없었어.
손잡이를 잡고 서서 유리창에 비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 떠오른 노래를 불렀지.
  서로 용납하라
  주 너를 용납함 같이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환한 불이 반짝 켜진 거야.
주 너를 용납함 같이 라고?
주님이 이런 나를 용납하신단 말이지?
주님이 나를 용납하시는데 나는 나를 왜 용납하지 않지?
말도 안 돼.
그건 교만이야.
주님이 나를 용납하시면 나도 나를 용납할 테야.
암, 그게 마땅한 일이지.
......
와아!
내가 나와 화해하며 껴안는 그 순간,
큰 평화가 밀려들어왔어.
그리고 열등감은 깨끗이 쫓겨나갔어!

어떤 이웃이 물었지.
"왜 암 말도 안 해?"
자기 자신을 싫어한다는 말에 왜 맞장구를 치지 않느냐는 거지.
우린 그 점이 같아서 친해진 사이였거든.
"난 내가 좋아."
"저 번에 만났을 때도 싫다 그랬잖아."
"그래, 그치만 이제는 좋아."
"왜?"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
"주님이 날 사랑하시니까."

근데 그 놈은 지금도 가끔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내가 또 속을 줄 알구.
처음엔 속아서 문 열어준 적도 있었지.
그치만 이젠 아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나는 얼른 주님을 봐.
그러면 주님이 일어나서 문을 여시지.
주님만 보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니까.
주님은 그 일을 귀찮아하신 적이 한 번도 없어.
귀찮아하시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신단다.
주님이 함께 계셔서 정말 안심이야.

난 이젠 방벽 같은 건 쌓지 않아.
모자라고 부족한 거 있으면 어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무시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내가 그걸 가져다 드리는 걸 무척 좋아하시거든.
힘이 되어주시고, 지혜가 되어주시고, 사랑이 되어주시려고.
그러니 내가 무슨 염려를 하겠어?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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