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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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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고동창생인 B와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장소는 제주도.....따뜻한 햇살에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제주도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두둥실 떠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B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부서에서 단체로 동남아 여행을 가기로 결정이 되서 B는 반강제적으로 참석을 안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비용의 상당 부분을 회사에서 지원하고 가족동반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모처럼의 우리의 계획은 무산되어 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할꺼나..... 가족동반으로 가는 여행이니 혼자 가는 친구에게 내가 함께 가도 그다지 별 지장은 없을 것 같아서 계획을 조금 수정해 보려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 날짜며 여러가지 사정이 어렵게 되었다.
" 어떻게 할꺼야? "
"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난 못 갈 것 같아."
" .................. "
못 갈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모처럼만의 여행 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B는 직장동료들과 생각지도 않은 동남아 여행을 가도록 결정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몇 주가 지난 며칠 전 B와 전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이 친구가 내가 여행을 함께 가지 못하게 된 것에 매우 실망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뭐랄까.....직감처럼 마음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 너....내가 함께 여행 갈 수 없어서 많이 실망했지? "
" 뭐......조금 실망은 했지......"
조금 실망은 했지........ B의 마음이 느껴져 왔다.
많이 실망했지...........
나는 생각지도 않은 계획 수정에 원래부터 이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노력은 했지만, 불가피하게 가지 못했으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그리고, B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가볍게 지나갔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B도 나와 같으려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새삼 B는 나와 참 다르구나 생각했다. (예전부터 그 사실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비교적 의사표현을 그대로 하는 편이다.  만약 내가 그처럼 실망했다면, 아마도
" 정말?  넘 실망이다.  같이 가면 좋겠는데.....도저히 안 되겠어?  넘 서운한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세상 사람이 다 나같은 줄 알고 내 방식대로 생각하다가 그게 아닌 경우에는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니까,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단연코 눈치채지 못하는 둔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왔으니까, 그나마 몇 주만에(?)  직감적으로 B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알 수 없었으리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단지 이 쪽에서 잘하려고 하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흘러 넘쳐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거기에 상대방이 어떤 성품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하며 어떻게 사고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엊그제 B를 만났다.  미리 만날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 그린차일드와 만나고 있었는데, 나중에 B가 합석을 한 것이다.
나는 그린차일드로부터 근처 영화관에 B가 혼자 영화를 보러 온다는 말을 전해 들은 터였다.  (물론, B도 우리가 그 근처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린차일드와 이런저런 이야기(대부분 갈릴리마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B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 영화 재미있게 봤어. >
우리는 통화를 했고, 이 친구, 그야말로 쏜살같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아직 꽃샘추위에 밖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밤인데, B는 숨을 헉헉 대며 땀으로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 단숨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 영화 재미있게 봤어.>
전같으면 나는 그냥 B가 영화를 재밌게 봤나 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다른 코드로 내 마음에 읽혀졌다.
< 어디야?  우리 만날까?  보고 싶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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