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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내 마음의 옹기단지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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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나는 바람에 주씨는 새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백화점에서 경비를 서는 일인데, 좀도둑 손님을 잡아내야 합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져서 다들 난리인지라 이만한 일자리라도 얻은 것을 감사해야지 하면서도, 주씨는 아침마다 괴로운 심정이 되곤 합니다.

  "마음 속을 볼 수 있는 특수 안경 같은 게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야."
  구수한 아욱 된장국을 먹으며 주씨가 말합니다.
  아내가 끓이는 아욱 된장국은 정말이지 맛이 일품입니다.
  아욱 된장국을 먹으니까 시골 고향집 텃밭이 떠오르고, 마음이 꼭 아침 이슬 촉촉한 상추처럼 싱그러워져서 어린애 같은 소리도 불쑥 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 봐요. 또 알아요? 소원이 이루어질지......"
  아내는 어린애 같은 주씨의 말에 한 술 더 보탭니다.
  그런 안경이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가서 얻어다 줄 것 같은 심정입니다. 착한 남편이 마음 고생 좀 덜 하게요.

  어제도 그저께도 백화점에서는 좀도둑이 잡혔습니다. 백화점 도둑은 도둑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손님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주씨는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눈초리가 고민스러운 것입니다.
  "에구 하나님, 하나님은 사람 속을 다 아시지요? 저 좀 도와주세요. 사람 속이 보이면 아무나 의심을 안 할 텐 데요. 그런 안경 좀 주세요."
  주씨는 출근 길에 하늘을 쳐다보고 중얼거립니다. 어릴 적에 마당에 서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요.

  백화점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주씨의 눈도 바빠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니, 웬 옹기단지들을 저렇게 갖고 다닌다지?'
  주씨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 아주머니도, 저 아가씨도,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가슴에 옹기단지들을 하나씩 품고 있습니다. 크기도 제각각이라 어떤 사람 것은 크고 어떤 사람 것은 작습니다.

  '아하, 저게 사람의 마음 속이구나.'
  주씨는 깨닫습니다. 자세히 보니 옹기단지에는 물이 담겨있습니다. 어떤 중년부인의 옹기단지는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맑은 물이 찰찰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던 뒷산 바위 밑 옹달샘이 생각나, 주씨는 빙그레 웃음 짓습니다.

  "동문! 동문 나와라, 오버!"
  갑자기 무전기가 주씨를 부릅니다. 고향생각에 잠겨 있던 주씨는 얼른 백화점 경비원으로 돌아옵니다.
  "동문이다, 오버!"
  "그 쪽으로 가고 있다. 하늘색 물방울 원피스에 긴 파마 머리. 가방에 스카프를 넣었다, 오버!"
  주씨는 눈에 힘을 주고, 재빨리 두리번거립니다.  
  "찾았다, 오버!"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그 손님은 나이가 서른 너덧쯤 돼 보입니다.
  주씨는 그 사람이 백화점 문을 나서자마자, 실랑이 끝에 사무실로 데려갑니다. 그 사람은 가방 속에서 스카프가 나오고서야 고개를 숙입니다.

  딱한 눈으로 지켜보던 주씨는 궁금해집니다.
  '저 사람처럼 혹시?'
  주씨는 두 손으로 슬며시 가슴을 가립니다.
  어렸을 때, 밤마다 몰래 영구네 복숭아를 따먹던 생각이 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남을 미워했던 것도 떠오르고, 책 산다고 어머니를 속여 용돈을 썼던 일도 떠오릅니다. 자기보다 형편이 못한 친구 앞에서 은근히 뽐냈던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자신의 옹기단지에서도 저 사람처럼 흙탕물이 흘러 넘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주씨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주씨는 누가 볼세라 저어하며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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