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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무진 사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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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사랑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이 때로 귀여운 친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어쩌면 텔레비전을 보다가 덩달아 바보가 되어 웃고 마는 때일 성싶다. 웃음 뒤에는 잔잔한 감동에 젖어 마는, 그런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나면 텔레비전은 분명 귀여운 친구다.

벌써 오래된 기억이지만,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안방에서 녀석들이 키득키득 웃길래 도대체 무얼 보고 그리 즐거워 웃고 있는지 내심 텔레비전에 푹 빠져 있는 녀석들을 혼내기라도 할 양, 한편 궁금하기도 하여 나 또한 슬그머니 텔레비전 앞에 앉고 말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듬성듬성한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마냥 환하게 웃고 계셨다.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그 프로는 어떻게 보면 순박한 시골 노인네들을 텔레비전에 등장시켜 실수를 연발하는 행동거지에 한낱 우스개 거리로 즐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없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나오는 노인들은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인 까닭에 그 분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울컥울컥 진한 감동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랴! 녀석들을 나무라기는커녕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웃음 가득한 그 프로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니, 웃음을 주는 그 분들이 바로 내 아버지, 어머니였던 까닭이었다.

오늘 출연진들은 내 고향 가까운 충남 당진이라는 곳이었다. 농촌의 실상을 취재하고 그 어설픈 모습으로 대처에 나간 자녀들에게 비디오 편지를 만들어 보낸 다음, 스튜디오로 노인들을 모셔와 넌센스에 가까운 쉬운 퀴즈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퀴즈게임에는 할아버지 두 분과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정답을 맞추기보다는 그저 생각없이 대답하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해학이요 교훈이지 싶었다.

"닭 잡아먹고 내미는 것은?"
"뭐긴 뭐여? 닭발이지. 워떠케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민디야?"
진행자인 개그맨 서세원씨와 탤런트 신은경씨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허리를 잡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질문은 계속되었다.
"난생 처음 TV에 나왔으니, 고향에 있는 짝궁에게 인사를 하셔야죠?" 그러자 할아버지가 한 분이 기다렸다는 듯,
"마누라. 날도 더운데 나 없이 혼자 마늘 캐느라고 고생이 많지. 나 방송에 나왔어... 내려갈 때 선물 사 가지고 갈테니께 기다려. 참, 무진 사랑혀. 무우진...."
코끝이 찡했다. 칠십 평생을 땀과 눈물로 얼룩진 당신들의 삶, 그럼에도 이혼이니 별거니... 그런 소리 입에 담지 않고 묵묵히 살아온 순명(順命)의 삶이었다. 그러기에 '무진장 사랑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격이 그 분들에게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그 고백이 내 가슴을 저미게 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어제 직장에서 사동(舍棟)에 들어갔다가 멋쩍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희미하지만 호탕하게 잘 웃는 그의 얼굴은 역력하여 금세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친구였다. 긴 얘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는 징역잽이(전과가 많은 수용자들을 통칭하는 비속어)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 만해도 벌써 서너 차례, 그래 그는 무안하고 겸연쩍어 피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마지못해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내 허탈한 생각이 들었고 '별 수 없군!' 하는 탄식으로 그를 멸시하고 있었다.

- 무진 사랑하는가?
아니었다. 아, 내일 다시 그를 만나면 진정 그의 손을 다시 잡아주고 내 속마음으로 그를 감싸주리라. 그가 죄인이면 나 또한 죄인이며 그를 구속(救贖)한 주께서 나를 구속하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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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lumn.daum.net/daman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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