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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고난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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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남의 어떤 어려움이 내게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남의 어려움을 발견했을 때 나는 또 하나의 내 세계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동지를 발견하게 된다. 병원 환자가 다른 환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던가? 재활원 불구자가 다른 불구자를 피하던가? 포로 수용소의 포로들은 또 어떤가? 다른 이의 재앙을 기뻐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특수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만의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고난의 교제이다.

불행한 쪽으로 좀 특수한 처지라고 해서 자기 현실을 역겨운 비운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에서 자기를 용납하라. 그렇지 못할 때 생의 의욕을 잃을 것이다. 아합 왕 때에 과부가 많았으나 사렙다 과부는 자기만이 홀로 고난을 당하는 줄 알고 생의 의욕을 잃었으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도 자기 혼자서만 핍박당하는 줄 알고 자기 생명을 거두어 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것은 고난의 고독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고독한 고난 속에서 불행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 칠 천명을 남겼다고 하셨다(왕상 19:18). 베드로 사도는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와 싸워 고생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고 하였다(벧전 5:9). 당신은 고난 중에도 외롭지 않다. 적어도 예수님만은 끝까지 당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그 분은 고난의 주님, 나의 주님이시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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