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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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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든 교사는 참으로 보람 있는 직업입니다. 학생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은 더 없는 행복입니다. 때로는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기대한 만큼의   성장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실망도 합니다. 그러나 한 해 동안 동고동락한 아이들을 떠나 보낼 즈음에는 어느새 키도, 생각도 한 뼘씩 자란 저들의 의젓한 모습을 보며 남들은 알 수 없는 희열을 맛보기도 합니다. 2002학년도는 지금까지의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든 한 해였습니다. 유난히 제가 맡은 학생들 가운데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 중 두 아이는 잦은 결석으로 1년 동안 무던히도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로 인하여 상심이 컸지만 또한 많은 것을 경험하며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그 아이들이 40일 동안 가출한 후에 학교에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즈음의 여러 가지 제 심경을 학급 홈페이지를 통하여 우리 반 학생들에게 고백했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상급 학년으로 진급 시키며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선생님은 올해로 교단에 선지 9년째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담임교사 맡기를 부담스러워 한단다. 그것은 담임 교사이기 때문에 맡아야 하는 업무가 과중할 뿐더러 또한 학생들의 교내 외 생활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 동안 대학원 수학을 위하여 몇 차례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에게는 여섯번째의 학급 학생들이란다. 그 동안 남학교와 여학교를 거치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그 중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여럿을 봤지만 올 해의 OO와 OO이처럼 이렇게 대책 없이(?) 방황하는 학생들은 처음이란다.
여름방학이 지난 어느 날 그 아이들이 가출을 하고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 처음에는 속도 많이 상하고 그들이 너무도 괘씸했었다.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고 시간이 흐르며 그들을 찾는 일도, 기다리는 일에도 지쳐 갔단다. 어느새 나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게 되었다. 그들로 인하여 남아있는 너희들에게 더 이상 찌푸린 담임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나 역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단다. 한 달이 훨씬 지나서 삼촌과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등교한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오히려 담담할 수 있었던 것도 내 마음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OO와 OO이는 가출 과 무단 결석에 대한 선도 처분으로 시각 장애아를 위한 학교인 부산맹학교에서 5일간의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단다.

오늘 아침 아이들을 그 곳 선생님에게 인계한 후 무심한 마음으로 교문을 돌아 나오는데 마침 등교를 하는 많은 시각 장애 학생들을 바라 보던 중 순간 내 마음이 무엇인가에 찔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단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하얀 지팡이에 의지하여 혼자 걷고 있었지만 대부분 초 중등 과정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등교를 하고 있었다. 아직 혼자서 길을 걸을 만큼의 훈련이 되지 않았기 떄문이리라.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선생님의 지도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그들의 선배들처럼 험한 세상도 홀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OO는 부모님 없이 외할머니에게서 양육을 받고 있고, OO이는 경제적인 문제로 아버지와 떨어져 살고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비록 그들의 신체는 건강할지라도 그 마음 속에는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할 많은 아픔과 슬픔이 있고, 그래서 학교와 사회로부터 더욱 적극적인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들인데 내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포기를 했다는 자책이 들었단다. 그런 어려움 속에 있는 아이들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지금껏 너무도 의례적으로만 위하는 척, 겨우 얼마의 물질적인 도움으로 내가 할 일을 다한 냥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척만 하였단다. 내가 좀 더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좀 더 그들의 아픈 마음을 감싸 주었어야 했는데 지금껏 그렇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자격이 없는 교사인가를 깨닫게 되었단다.

그 아이들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선생님의 마음은 아직도 옹졸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련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그 아이들을 우리반의 소중한 지체로 받아 들이고 함께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원한다. 좀 더 마주 보고 대화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희망한다.

예쁜 우리 8반 공주님들도 그 아이들을 좀 더 따뜻하게 받아주기를 기대한다. 아니 어쩌면 선생님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나 서로 최선을 다하여 보람된 중학교 2학년 생활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 조금 전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OO와 OO과 전화 통화를 했단다. 그들의 고운 목소리에 새로운 희망을 본다.
                                                 11월의 첫날 저녁 담임선생님

          
이제 희망의 봄 3월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올해는 진정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안교회 시온찬양대 회보 중 지휘자 칼럼> 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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