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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아웃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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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지체들이 돌아가며 나를 도와준다 해도 고정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현재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형제가 있다면 일남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돕는 일이 일남이에게는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서로에게 부담이 갈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도로 그것을 이겨나갔습니다. 아무리 일남이가 나의 장애를 이해한다해도 오해를 불러올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남이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에 있어 걸리는 것이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돕게 됨으로 자연적으로 다른 지체들과의 교제가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얼마전부터 그 문제에 있어서 저는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일남이도 일남이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고, 자유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도움받는 입장에서 한번쯤은 넓은 마음으로 생각해볼 문제였습니다.

청년회 행사가 활동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 많아 자연적으로 뒤로 물러나 보고 있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언제 와있었는지 일남이는 항상 내 곁에 있었습니다. 일남이는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일남이를 보면서 아웃사이드에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좀처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일남이는 말했습니다. 형을 도우려면 어차피 한사람은 이런 대가를 치러야 되지 않느냐며, 그 대가를 자기가 치르겠다며 나섭니다. 참 가슴이 아프면서도 따뜻한 그의 한마디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 나 한 사람만이 존재했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결코 다수를 위해 오시지 않고 나 한 사람을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오직 나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대가는 오직 외로움이었습니다. 마굿간에 태어나셨을 때도, 열두 제자와 함께 사역을 할 때도, 사형수의 틀인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즉 예수님도 아웃사이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그 아웃사이드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외로움은 우리를 향한 애정결핍 증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면서 일남이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일남이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드리는 아웃사이드의 섬김이 기쁨의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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