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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난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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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희의 기도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문득문득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내겐 잠잠히 한 가족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벌써 이십 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부산이라는 도시는 내게 있어서 정녕 잊지 못할 추억과 그리움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이듬해 나는 오히려 호적생년월일이 실제 생년월일보다 일년 더 빠른 덕에 또래들 보다 일찍 입영하게 되었습니다. 6.25 동란에 참전하셨던 아버지의 극심했던 군 생활을 아는 터라 어머닌 맏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연일 금식하며 아들의 군 생활이 평안하길 기도하셨습니다.

논산 제2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마치자 전방으로 향할 것 같은 군용열차 두 칸은 따로 떨어져서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청껏 군가를 부르고 건빵을 먹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동이 트는 아침, 그 밝은 햇살에 눈을 떴을 때 내 눈엔 참으로 놀라운 풍경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 강물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은 내게 더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게 있어서 33개월의 군생활은 크나큰 은총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모자람이 없는 후방부대에 편안히 군 복무를 마쳤다는 복을 누리기도 했지만 정작 더 큰 복은 부대 안에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대 주변에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비록 우거진 숲은 아니었지만 듬성듬성 키 큰 오리나무와 함께 종탑이 우뚝 서있고 그 아래 아담한 서구풍의 군인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칠월이면 그 동산의 그늘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틈틈이 동산에 올라 앞가슴에 품고 있던 포켓 성경을 꺼내 읽던 추억이 내겐 더없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크리스천 사병들이 모여서 신우회를 구성하고 어울려 찬송 부르며 나라와 전우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던 일, 찬바람 부는 금요일 밤이면 따뜻한 커피를 끓여 부대 내 여러 초소를 순회하며 사랑을 나누던 아름다운 정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한참 후배인 이등병 군종(전도사님)의 설교는 더더욱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느헤미야서를 강해하며 우리 삶의 문제를 뜨겁게 질책하던 젊은 전도자의 설교는 여직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그 시기는 분명 내 신앙생활에 눈을 뜨던 시기였습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주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 가운데 그 때 받은 말씀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진하게 되살아나는 이유를 나는 모르지 않습니다.

정작 부산은 내게 이토록 소중한 신앙의 추억 위에 더욱 애틋한 신앙생활의 한 모델이 있었으니, 그 모습은 늘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벌써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 그림은 빛 바랜 듯 싶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오롯이 되살아나서 선명히 떠오르는 그림 말입니다.

광안리 바다는 참 푸릅니다. 파란 바다에서 모래톱으로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 난희네 식구들은 어쩌면 그 바다만큼이나 파란 마음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것은 집안 형편에 비해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그리 투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고 허름한 집에서 외할머니와 혼자 사는 어머니와 외삼촌과 네 이모, 두 동생과 더불어 사는 난희 네는 겉으로야 대수로울 게 없는 가난한 살림 그대로였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집에 피어나는 부요의 꽃! 마치 그 집은 가정을 통한 하늘나라의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가난한 그 집의 살림을 너무 미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을 갖기도 합니다만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 가운데 서로가 말없이 위로하고 격려하며 웃음으로 힘이 되어주는 진정한 가족애의 모습이 그 집에 넘치고 있었으니까요.

정말이지 그 집을 날마다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요 그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숨어서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불쑥불쑥 찾아드는 젊은 사병들을 친자식처럼 대접하며 기도해주시던 그 할머니 권사님의 뜨거운 사랑을 나는 도무지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할머니 곁에서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감사 기도를 하던 작은 소녀, 난희도 잊을 수 없습니다.

* 다음 사이트로 오시면 지난 컬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러분을 독자(독자가입)로 초대합니다.
   http://column.daum.net/daman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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