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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평신도 들이시여! 아이고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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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은 평신도의 각성으로부터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요약하라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 안의 기복신앙(세속주의)과 둘째, 선교적 사명에 대한 태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도 있지만 교회개혁 차원에서 검토해 보겠습니다. 먼저 교회안의 기복적인 신앙생활이 지향하는 목표는 바로 '복'을 얻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를 내려야 하는데 다분히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에 기인된 부귀영화와 장수등 오복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기복신앙의  근본적인 특징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신앙의 중심에 둡니다.

그러며 이러한 기복신앙의 병폐는 무엇일까요? 첫째, 복음의 오해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하급 신앙으로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이제는 이 세대로부터 비난과 거부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거룩성과 정결 성을 상실하였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배타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런 비윤리적이고 몰 역사적인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인하여 신앙과 생활의 분리로 기독교의 숭고한 윤리성을 상실하였습니다. 신앙적인 개인체험이나 신비적인 현상만 강조하여 교회 전체의 선(善)이나 사회정의는 무시하였습니다. 작금의 사회, 정치, 경제적인 부패와 비리 등에 연루된 크리스챤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세째로, 크리스챤들이 가지는 이런 기복적인 성향을 교역자들이 교회성장의 목표에 적절히 이용 하  므로서 교회를 하나의 기복신앙의 센터로 전락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신학적 혹은 성경적인 무지와 편견, 그리고 일반 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에 대한 훈련부족, 무지, 어리석음 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또한 시대적인 현상들과 (잘 살아보자는 경제적인 요청과 서구교회의 적극적인 사고방식,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등) 잘 조화를 이루어 상승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는 서민과 중산층을 흡수하여 양적 성장을 이루었고 경제 생활의 향상으로 교회는 윤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적인 부가 축복과 은혜 받은 증거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신앙은 교조주의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즉, 교회출석과, 헌금, 봉사, 기도 등은 축복과 성공을 가져다주는 확실한 방법으로 인식되어 모든 신앙의 형태는 이러한 몇 가지로 통일되었고 교회의 가르침은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범주들로 신앙은 평가되고 판단되어졌고 사회정의나 윤리, 역사적 책임, 경건 되고 모범적인 삶의 모습은 사라졌고 신앙은 당연히 형식주의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성장기술이나 축복 받는 방법 등 기능적인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수단이나, 방법들이 목적을 정당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귀결로 교회건물은 '성전'으로 신성시되었고 교역자들의 역할은 축복의 중재자로 격상되어 갔습니다. 종교개혁이전 시대로 후퇴한 것입니다. 교회의 예언자적인 영성이나 경건은 사라졌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헌신들은 세속적인 목표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시대와 사회가 요청하는 문제나 고통들을 외면했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선교도 당연히 무시되었습니다. 교세가 확장됨으로써 교회는 부유해 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기득권유지나 더 높은 권력을 얻기 위해 서로간의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말이며 세상과 구별이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성경의 말씀처럼 소금과 빛이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버려져서 밟힌다는 경고의 말씀을 기억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구약에서는 물질적인 복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표현된 곳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축복의 개념을 세상적인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안에서의 축복을 나타내기 위한 제한적인 표현이며 신약의 복음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복은 소유하는 복이 아니라 크리스챤들이 복의 근원으로써 이웃과 세상에 나누어주는 복을 말합니다. 신약에서의 '복'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을 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오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축복으로 표현했고 경건한 삶 자체를 축복으로 선언하였습니다. 세상적인 복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세상적인 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복'도 예수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시며 청지기적인 의식이 강조되어 그에 따른 책임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복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와 평안이며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삶인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이 말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해야하며 또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외에 신성시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복음의 회복을 위하여 평신도들이 먼저 각성해야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회개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하여 자기의 삶과 모든 것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자기의 직장과 삶의 터전에서 온전한 전도인의 삶을,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하기에 힘들고 때로는 고달픈 삶이 되지만 선교적인 사명을 위하여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야하며 Mission과  Business를 결합한 형태의 자비량 선교사로 직장으로 일터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평신도들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꾸준한 말씀생활과 기도생활, 성숙된 신앙인격,  지속적인 훈련, 독서, 동역자 들과의 협력관계 유지등이 필요합니다. 평신도들이 제한된 교회활동에만 머물러있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과소 평가했던 부분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최소한 신앙의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너무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안일하고 나태한 신앙에 안주해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변화를 싫어하며 배우기에 힘을 쓰지 않는 이상 교회개혁의 희망은 없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교회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복음을 재 해석하여 끊임없이 방법을 연구하여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사명에 평신도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여 나를 보내소서'라는 고백처럼 모든 평신도 선교사들의 각성을 통하여 교회의 진정한 개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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