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책소개] 관계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빚기1(1~4장)

첨부 1



저자 : 더글러스 웹스터 (윤종석 옮김)
출판사 : 성서유니온선교회
읽은 날 : 2003년 1월 어느날...

<내용요약(Summary) 1~4장/13장>

이 책은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다듬으시며 영적 생활의 모습을 이루시는지 보여준다. 상대가 누구든 하나님은 일상의 모든 관계를 사용하셔서 우리를 마음과 뜻과 힘과 생명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는 자로, 당신의 형상으로 빚으신다.

1. 영혼빚기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19:7)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고 했거니와 성경에 있는 이런 권고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에 미치는 힘은 담배갑에 있는 경고문이 흡연자들에게 미치는 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1-1. 영혼
영성과 심리학의 관계는 생물학과 의학, 정치학과 정부의 관계와 같다. 참된 영성없이 자존감을 논할 수 없고, 하나님과 교제없이 대인관계를 생각할 수 없다.

1-2. 기도
기도는 '영적인' 일이 아니다. 현실적인 일이요, 실제적인 일이다. 주인이신 하나님없이 영혼빚기를 하려는 것은 무모하고 주제넘고 독선적인 일이다.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설명하는 대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 기도를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고통에 집착하는 것이 왜 이토록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을까?
기도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타인이 단연 하나님이요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선포한다.
영혼 빚는 자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 마음을 둔다면, 모든 것은 병 수발이나 꽃다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가벼운 감기를 앓고 있다면 인기 있는 책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조언대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악성 질환을 앓고 있는데 그렇게 산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1-3. 하나님의 말씀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인 뿌리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관계에 의도하신 의미의 참된 본질과 깊이를 깨달아야 할 때다.

1-4. 겸손
겸손이란 하나님의 명령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겸손이란 그 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겸손에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내어드리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자신의 죄성과 하나님께 의존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겸손이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정직히 고백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인 것이 또 있을까? 겸손이 없는 곳에는 늘 수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진정한 겸손은 자아를 바로 알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마음과 그 분의 뜻에 대한 헌신을 더욱 강하게 해 준다. 겸손과 권위는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진정한 믿음은 강한 자아가 아니라 겸손이 좌우한다.

'오늘날 우리의 고통은 엉뚱한 데서 겸손한 것이다.' -G.K.체스터톤-

1-5. 큰 돌부터
우리의 최종 목표는 멋진 부부관계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히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그리스도의 마음, 겸손이 필요하다.

2. 은혜의 리듬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2-1. 관계, 하나님의 선물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 분 외에는 출발점이 될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무익하다. 출발점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내가 만드는 세계인지, 하나님이 만드시는 세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우리가 만드는 세계에는 우상과 혼돈과 흑암이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시는 세계는 지혜와 질서와 빛이 충만하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개인의 세계는 혼돈과 흑암과 무의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2-2. 권태
내 중요성은 삶의 속도와 정비례하는 듯이 보인다. 정신없이 살수록 자기 가치도 높아지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삶의 물리적, 물질적 운동성을 유지함으로 우리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권태가 모든 악의 뿌리가 될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그 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쉼 없는 활동이 인간을 영혼의 세계에서 몰아내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본능에 이끌려 언제나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짐승이 아닌가?' -키에르케고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노력, 안전을 확보하려는 노력, 세상을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려는 노력을 그만하는 것이다.

2-3. 성육신
겸손한 신자는 아들을 통한 구원의 선물에 대해, 기쁨과 축복이 가득한 생명 자체에 대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린다.

3. 영혼인 인간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영혼)을 바꾸겠느냐?"(마16:26)

인간의 가치는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 이것은 우리가 교제와 공동체, 합리적 묵상과 의로운 순종, 예배와 일을 위해 지음받았다는 뜻이다.
내 존재의 본질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내가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인간이 씨름하는 모든 강박과 장애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 자기중심성이다. 우리의 불안과 교만의 뿌리에 바로 그것이 도사리고 있다. 영혼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합리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중심성뿐이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는 자기부인이 곧 자기만족의 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날마다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도전과 씨름한다. 영혼인 인간이 영혼 없는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3-1. 영혼 없는 세상
스트레스를 풀고 꿈을 실현하며 행복을 찾는 것이 현대의 구원이다. 영혼 없는 우리 시대 문화에서 신앙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이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 많지만, 영혼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분이 딱 한 분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영혼은 너무 값진 것이라 천하를 얻는다 해도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3-2.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온전히 알고 있다는 것을 존재 깊숙이 깨닫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아기의 출생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주권을 묵상하며 우리가 그 분께 의존하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 준다.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도 그와 같이 현실적이다. 주 하나님은 우리를 속에서 겉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아신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자기를 온전히 아신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윗은 잘 알고 있다. 다윗의 생각과 감정은 하나님 앞에 펼쳐 놓은 책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윗은 익히 알고 있다. 어거스틴은 신앙성장의 열쇠를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겸손! 겸손! 겸손!" 다윗이야말로 그 겸손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인간의 가치는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가치와 의미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중요성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우리가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진실하고 건전한 지혜라고 여길 수 있는 한 우리의 지혜를 이루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두 요소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에게 있는 자질이 결단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고 그 묵상을 바탕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전에는 결코 진정한 자기이해에 이를 수 없다.

3-3.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4. 온전함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

독신이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직면하는 영혼 빚기의 독특한 도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독신인 사람은 진정 완전할 수 있고 기쁨으로 온전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다. 그리스도 중심인 온전함으로 나타나는 독신생활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독신자는 사람들이 그토록 상상속에서 꿈꾸는 모습인 자율적 존재로 자아실현에 힘쓸 자유가 있는 반면에 채워지지 않은 듯한 관계적 자아의 두려운 고독에 직면해야 한다.

4-1. 독신자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독신자로 사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어려운 천국의 소명 중 하나일 것이다. 교계에서도 독신자는 자신을 어딘가 모자란 인간으로 느끼며, 이혼자나 사별자는 2등급 그리스도인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할 때가 많다.
많은 독신자들이 그리스도께 가장 깊이 헌신한 사람들이면서도 동시에 부부와 가정 중심의 문화와 교회에서 가장 상처입기 쉬운 사람들이다.
대체로 우리는 예수님이 독신이셨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그 분의 완전한 인성과 온전한 겸손이 우리를 그 분의 삶에 동참하도록 부르고 있다. 우리 주님이며 구주이신 그 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위의 것을 찾으며 사는 법을 보이기위해 우리보다 낮아지셨다.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에서는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헌신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어떤 다른 요소보다 우선이다.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성을 영혼 빚기와 제자도라는 더 큰 정황 안에 둔다.

4-2. 하나님을 아는 것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적인 충성을, 온 삶을 바치는 헌신을, 온 마음을 드리는 열정을 요구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지금도 어려운 메시지다. 우리는 부담없는 기독교나 주말 신앙이라는 개념을 모두 깨끗이 버려야 한다. 정말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면 되돌아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분은 대가를 낮춰서 좀더 마음을 끌려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제자도에 따르는 대가를 일관성 있게 강조하셨다.

예수님의 주되심에 직면한 독신자들은 이렇게 답하는 성향이 있지 않은가?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하지만.. 나로 먼저 배우자를 찾게 허락하소서."
성적 친밀함과 결혼을 구원 자체와 라이벌이 될 정도로 우선순위에 놓으려는 유혹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온전한 인격이란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 성 경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자도에 대한 부르심이야말로 결혼보다 높은 소명이다.

독신 신자가 그리스도께 신실한 삶을 택하는 것은 곧 마리아와 같은 태도로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는 것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타당한 이유로 독신으로 사는 것은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신실함의 문제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면, 오직 일심으로 따르는 제자도로 부르심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섹스에 물든 문화에서 살면서 우리가 겪는 위험 중 하나는, 성적 갈등이나 대인관계의 유혹 앞에서 하나님께 신실한 마음을 지키는 것을 구태의연한 행동으로 여기는 것이다. 과거 그리스도인들이 성적 순결과 순전한 헌신의 열정을 지키기 위해 힘써 싸웠던 그 열정을 우리는 당연히 회복해야 한다.

4-3. 겸손인가 굴욕인가
"남자가 결혼하지 아니함이 좋다."(NIV)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결혼의 가치를 인정하는 바로 그 문맥에서 선포한 말씀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전7:1,7)

바울은 복음을 위해 열렬히 독신을 항변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더 훌륭한 대안으로 독신 생활을 권한다.

'기쁨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모든 기도를 응답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믿는다. 하나님이 나보다도 내 필요를 훨씬 잘 아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황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그 분은 정말 의지할 수 있는 분이다.' -오스카 와일드-

독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 온전한 자가 될 수 있다. 교회와 세상이 어떤 굴욕을 준다 해도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모두 이길 수 있다. 겸손은 독신자를 자유롭게 해서 인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독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온전한 징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