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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의 진리실험이야기> 나도 땅장사해서 땅땅거리며 살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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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리실험이야기> 나도 땅장사해서 땅땅거리며 살려고 했는데......

임대교회당에서 목회하는 개척교회 목사에게는 빈 땅만 보이면 교회당부지로만 보입니다.
이것이 옳지 못한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좋은 장소에서 교회당 세워 놓고 있으면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는 ‘부동산목회론(?)’이 제게도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소신목회를 내세우고 있지만, 항상 임대비에 쫓겨야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몇 달만 지나면 소신이고 뭐고 어디로 사라진지 잘 모릅니다.

어제는 하도 답답하여 온 시내를 한바퀴 빙 둘러 보았습니다.
“저곳은 참 좋은 곳(?)이지만, 땅값이 대략 평당 300만원, 그리고 저 곳은 200만원, 또 저 쪽은 150만 원쯤 되겠지만, 너무 후미지고 인적이 뜸한 곳........”
아무리 계산해도 우리의 능력으로는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현재적으로는 우리 교회당 장소가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우연히 있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만히 보면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틀림없이 성공(?)을 거둡니다. 밀려드는 성도를 주체하지 못하여 멀쩡한 교회당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개발 가능성이 있는 땅을 물색하여 구입하여 두고, 그곳의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립니다. 땅값만 오르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능력인 것처럼 인정되고 있습니다. 유전유능(有錢有能), 무전무능(無錢無能)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경제적 능력이 없는 교회에서는 간혹 이를 비판하지만, 그런 교회도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교회는 가지고 있는 땅이 개발되어 땅값이 몇 배 혹은 몇 십 배로 튈 경우, 이를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으로 여깁니다. 실제로 이런 간증을 하는 사람을 더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일까요?

레위기25:23에는 토지를 매매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동산 소득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동하여 소득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 부동산 개발 차익으로 소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에 토지에 대한 관념이 충돌하여 일어난 살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입니다. 나봇은 아합의 왕궁 곁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왕은 그 땅을 왕궁 안으로 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봇에게 제안을 합니다. 그 땅을 더 좋은 땅으로 바꾸어 주겠다. 원하면 그 땅의 값을 후하게 쳐 주겠다. 그러나 나봇은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단순히 조상이 물려 준 땅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봇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아합의 왕비(베니게, 즉 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은 나봇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쉽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아합과 이세벨은 끔찍한 죽음을 당하고 아합의 왕조는 사라지게 됩니다.

이세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아합왕은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그녀는 바알의 토지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합이 그 땅을 빼앗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그래도 율법에 대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의 토지법은 가진 자는 얼마든지 많은 땅을 사들여 소유할 수 있는 법입니다. 가만히 공부해보면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가 바로 이 토지의 소유에서부터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빈부의 차이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토지 정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바알의 토지법을 따르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토지를 매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그저 구약의 케케묵은 법에 불과할까요? 우리에게는 도무지 적용되지 않는 법일까요? 여기에 대하여 100여 년 전, 깊은 연구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헨리죠지라는 이 사람은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경적 토지 정책을 바탕으로 토지공유, 자본사유의 원칙으로 세상에 경제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토지단일세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땅을 공유로 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통해 그 방법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방법을 실행한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고 모두 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론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개발차익으로 일어나는 소득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복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그냥 우리의 교회들조차도 21세기의 바알의 경제구조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 예속되어 있다는 의미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주어졌을 경우에 그냥 감사함으로 받기는 해야겠지만, ‘부동산목회(?)’의 성공이 간증거리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땅 값이 오를수록 세상은 살기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역시 ‘한 영혼’입니다. 그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 주님도 빵빠레 울리는 거대한 역사로 복음의 역사를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대한 역사를 기대하기 보다는 작은 일 하나, 하나에 충성을 다하여야겠습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깊이 연구하고 쓸 여유가 제게 없습니다. 다시 정리하여 쓰겠다는 약속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은데, 성경적 삶을 위해 여러분께 여러 책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적인 경제관, 또는 토지관에 대한 책을 참고 하려면, 진보와 빈곤(헨리죠지, 무실출판사),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크리스토퍼 라이트, IVP), 기독교경제학(김세열, 무실), 소유와 분배(룩 존슨, 대장간), 두체제를 잇는 가교(대천덕, 고왕인, 헨리죠지협회), 토지와 자유(대천덕, 무실), 성서로 본 땅(윌터 브루거만, 나눔사) 등등 많은 책이 있습니다.)  

          


順天바람직한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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