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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쉬게 하리라 (마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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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게 하리라   마11:28-30  (2003.03.02)

어디까지나 이야기니까 그렇게 알아 들으십시오. 잘못 듣고 졸다가 듣고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염라대왕이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문제가 됩니다.  염라대왕 앞에 세 사람이 불려 왔는데 생명록을 보니까 아직 죽을 사람이 아닌데 저승사자가 잘못 데려왔습니다.  염라대왕이 사과를 하고 “자네들은 세상에 돌아가서 몇 년 더 살다 와야겠네. 실수해서 잘못 데려온 것이니 그 값으로 소원 한 가지씩을 들어주겠다.  

그러니 각자 소원을 한 가지씩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돈을 많이 가져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돈을 듬뿍 주어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권세를 달라고 해서 권세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돈도 권세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 동안 세상에서 너무 많은 걱정과 근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걱정 근심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랬더니 염라대왕이 “예 이놈”하고 호통을 치더니 말했답니다. 세상에 그런 데가 있으면 내가가겠다"

현대인들은 무척 힘들어 하고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꼭 일이 힘들어서 피곤해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고달프고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잘합니다. 자그마한 일을 가지고도 쉽게 짜증을 냅니다.

운전 중에 서로 시비가 되고 나중에는 큰 싸움으로까지 진행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힘들어서 마음속에 이미 짜증이 가득 들어있기에 자기 마음을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ex/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짜증이니 나오는 것이 짜증 밖에는 없습니다./ 물 풍선을 터뜨리면 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 짜장면을 목구멍까지 먹고 토하면 짬뽕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먹은 것이 그대로 나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염려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보면 하고 있는 염려가 대부분 쓸데없는 염려라는 것입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염려합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염려는 소용이 없습니다.
끝난 일은 염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염려할 것 없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미리 염려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딸 시집 보낼 걱정을 합니다.  
딸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 20살이랍니다. 그 때 가서 걱정해도 늦을 것 없습니다.  그런데 미리 염려하고 있습니다.(ex/딸 시집밑천 최하로 3,000만원. 몇일전에 집 사람과 이야기했다. 돈 가지고와서 결혼하자는 사돈을 만나면 되지 - - - - )    
이것뿐이 아니고 별 걱정을 다합니다. 성경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
안되면 어떻게 하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늘 걱정입니다.
소화만 좀 안 되도 위암에 걸린 것은 아닐까?  염려합니다. 머리가 아프면 이거 뇌종양이 아닌가 ? 그냥 염려와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을 것도 걱정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이 찾아와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온갖 걱정과 염려로 마음마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피곤하고 지쳐 있는 우리 인생들을 향한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멍에를 매라고 요구하시기 전에 먼저 주님 앞에 나와 우리의 짐을 내려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에 물을 담으려면 그릇에 담겨진 것을 먼저 버려야 하듯이 우리가 우리의 어깨에 있는 짐을 내려 놓기 전에는 주님의 멍에를 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할 짐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하여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의 멍에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 이후에 우리에게 죄로 인하여 내려진 공통된 형벌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무척이나 힘들어 하고 곤란을 겪으면서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수고해야하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책임 져야 하는 아주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은 져야할 책임의 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생활비, 의료비, 학비, 결혼비용, 가족이 문화의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하는 책임.
이러한 책임의 짐을 져야 하는데 지지를 못하면 가장이 기가 죽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은 져야할 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녀들은 자녀들 나름대로 짐이 있습니다. 공부로 인하여 찾아오는 짐, 이성 문제의 짐,
친구 관계의 짐 이런저런 일들로 받게 되는 스트레스라는 짐이 있습니다.
남편들 기죽이는 말도 얼마나 큰 짐입니까 ? 아내들이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주제에 그렇게 말해서 주는 짐 이게 얼마나 무거운 짐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가장 무서운 것은 죄의 짐입니다. 사람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고 고민하지 마시고 죄의 짐 아니 모든 인생의 짐을 주님께 내려 놓으시고 참된 쉼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서는 쉼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을 잔다고 쉬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쉬는지 몰라도 마음은 쉬지를 못합니다.
꿈에서 마저 염려요 걱정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게로 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들에게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주님께서 초청하셨습니다.

여러분 수고하고 있습니까?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참된 안식 참된 평강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모든 무거운 짐이 다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내게 오라고 한 다음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나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나온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가 무엇입니까 ? 멍에란 소의 목에 얹어서 쟁기를 끌게 하는 나무로 된 농기구를 말합니다. 지금은 기계로 하지만 옛날에는 소의 목에 멍에를 메어서 거기 쟁기를 달아 논과 밭을 갈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소로 쟁기를 끌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두 마리의 소가 함께 쟁기를 끌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히 두 마리가 끌면 한 마리가 끄는 것 보다 힘이 훨씬 덜 듭니다. 마치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듯이 예수님과 멍에를 함께 메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란히 멍에를 멥니다. 예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거기 메여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었지만 사실은 주님의 힘으로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메기 전에는 힘든 것처럼 보여도 메고 나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멜 때 주님이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주님의 멍에를 맨 다음에는 주님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심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큰 원인 중 하나가 교만과 미움입니다.  교만하기에 힘들고, 증오하고 시기하기에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교만을 겸손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때 짐은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생각해보세요. 가장이 가족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랑으로 할 때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인생의 보람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사랑으로 일할 때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사랑하기에 10-kg쯤 되도 하루종일 업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10kg짜리 돌맹이를 가져다 하루종일 업고 있으시라면 힘들어서 못합니다. 돌맹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손자는 무겁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인생의 짐은 무겁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섬김의 마음입니다.  주님, 땅에 계시는 동안 한 평생 온유와 겸손으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의 발을 씻겼고 사람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왜 힘들고 피곤합니까?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미혹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하버드 대학 교수가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려고 결심했을 때 사람들은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우웬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때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들 속에 들어갈 때 나는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섬김의 삶, 그것이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 삶을 결코 피곤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DL 무디는 영혼의 안식 이것은 고달픈 모든 인생들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혼의 안식이야 말로 모든 인생들의 목표입니다.
이렇게 안식을 갈급해 하는 인생들에게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석병교회 이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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