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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목사의 정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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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20 초반이던 신학 대학생 시절(전, 81학번입니다.), 목회를 오래 하신 반백(半白)의 노 목사님의 금언(金言)중에 '목사는 가능하면 강단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삼가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녁 뉴스 화면이 연일 시위 현장의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채워질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무책임하게 생각되고,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목사가 누구인가? 시대적 소명을 아는 지식인 아닌가? 또 마땅히 시대를 깨우는 양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후 뜨거운 젊은 피들은 성경책을 덮고 거리로 나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중엔 저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당시 80을 훨씬 넘기신 老목사님께서 노구(老軀)를 이끄시고 교문 앞에 버티고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학생들을 막으셨습니다.

"안된다 안돼. 지금은 나가면 안된다..."

교문밖에는 이미 최루탄과 기타 시위 진압용 복장을 갖춘 전투경찰 병력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된 시위에 지치고 충혈된 눈으로 잔뜩 독이 올라 움켜잡은 곤봉에 잔뜩 힘을 준 채, 학생들이 나오기를 벼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의하는 총학생회 임원들, 또 여러 학생들에게 老교수께서는,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돌 몇 개 던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 정신 가지고 기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때 실망했습니다.

'지금 이 판국에 기도나 하라니? 이것이 보수주의 신학의 역사의식이란 말인가!'

너무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며, 현실과 괴리된 채 자기 신학(神學)의 틀 속에 있는 벽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 중 누구도 늙은 교수를 밀어젖히고 나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불만은 있었지만, 스승에 대한 예의와 존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만큼 그 어른은 압도할 만한 위엄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후...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뀌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 번 체험했고, 인생도 조금씩 영글어 간다는 마흔을 넘긴 자리에 있으며, 또 지금은  매 주일 설교를 하며,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하나님의 주권을 새겨보면 새겨볼수록 나의 혈기는, 나의 의분은 조금씩 조금씩 탈색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 교문을 가로막고 서셨던 그 노 교수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누가 내게 "데모할래? 기도할래?"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기도"쪽으로 결정을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외면하며 무책임하게 고작 한구석에 앉아 "기.도.나"하겠다는 비겁함도 아니요, 무슨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의 도피나, 늙고 병들어가는 사람들의 특징처럼 매너리즘적인 현실안주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무기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확신 까닭입니다.

요즘 저는 '열왕기하'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곳에도 성서유니온刊 '매일성경'을 가지고 큐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와 같은 본문을 묵상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부침(浮沈)을 보며, 특별히 오늘은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꾀하며 자랑하고, 떠벌리는 히스기야 왕의 교만하고, 어리석은 모습, 말(言) 실수, 사려 깊지 못함, 무책임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나 자신의 모습을 살핍니다. 그리고 또한 지금 우리 나라를 생각하며, 현재의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밝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지금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노사모'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섰던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도, 당연히 믿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는 또 다르게 굴러가고 있음을 보았고, 저는 승복했습니다. 이 나라는 대통령이 똑똑하거나 잘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이신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앙 고백 까닭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내가 원치 않았던 대통령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쉐퍼님이 옮겨 오신 글과 이에 대한 가일아빠님의 답글, 그리고 또 다른 답글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글들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Never-ending story)입니다. 왜냐하면 이 글들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세대간의 분명히 구획(區劃)된 생각의 틀이요, 관점의 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누가 옳다고나 그르다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 들면, 분이 나고 소리가 커지고 다툼이 생기는 글입니다... 둘 다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 다 틀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 그러냐? 양비론(兩非論)은 무책임하다. 네 입장은 무엇이냐?"라고 하실 분이 혹 계시겠지요...

제 입장은 앞에서도 이미 말씀드렸지만, 주권자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불의한 정권이 들어서고, 불의한 정책이 시행되고, 참으로 애꿎은 인명들이 학살되고, 전쟁이 터지고... 그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고, 하나님은 역사하시고(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갑론을박(甲論乙駁), 우리의 의분(義憤), 우리의 시위(示威)... 그 모두도 하나님의 역사의 큰 틀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이런 글들은, 분단된 조국의 슬픈 현실 속에서 이 백성들이 가슴으로 지고가야 하는 또 하나의 아픔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은 보수니 진보니, 또는 애국을 논하는 민족주의자들이나 기타 무슨 '주의자'들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큰 구원의 틀'( 신학적 용어로 '구속사'(救贖史)라고 하나요?) 안에서 이 땅의 삶을 잠시 나그네로써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이런 저런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 달라지지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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