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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26 - 목회자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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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해 팔십 삼 세이신 이 집사님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서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허리를 삐끗했다고 했다. 나는 파스 몇 봉지를 사들고 아내와 함께 서둘러 집사님 댁으로 향했다.

   "별 일 없어야 할텐데…."

   지난 겨울에도 눈길에 미끄러져서 얼굴와 팔목에 시퍼런 멍이 든 채 한동안 바깥 출입을 안하셨던 집사님이었기에 더 염려가 되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높은 마루 아래 놓인 디딤돌만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우리를 맞이했다.

   인기척에 방문을 열고 내다보시는 집사님의 얼굴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집사님은 한사코 "뭘라고 오셨당가라우…암시랑토 안헌디…"하시면서 겸연쩍게 웃어 보이셨다.

   내가 "집사님, 좀 어떠세요?" 하고 묻자, 집사님은 통증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아내는 준비해간 파스를 집사님 등허리에 조심스레 붙혀 드렸다. 이내 집사님의 얼굴이 봄꽃처럼 화사하게 펴졌다.

   돌아오는 길…,

   문득 마음 속에 사무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 나는 어떤 목회를 하고 있는가? 파스처럼 성도들의 아픔과 통증을 통째로 보듬고 사랑하는 목회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파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다. 그리고 조용히 생(生)을 마친다.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성도들의 고통을 외면한 적은 없었던가? 성도들이 연이어 입원할 때면 속으로 불평하지 않았던가? 나의 그릇된 고정관념 때문에 돌보지 않은 성도는 없었던가? 참으로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날마다, 순간마다 한 장의 파스가 되어 성도들의 아픔과 통증을 양식 삼아야겠다. 그럴 때 내 가슴은 점점 더 시원해질 것이다. 살맛 날 것이다.

   목회자의 진정한 기쁨은 성도들을 내 몸처럼 돌보는 데서 오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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