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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야베스의 기도를 설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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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말에서도 예전에 문동근님이 부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를 가지고 정리한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제가 오늘 주일설교를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서 제 나름대로의 견해(해석)를 가지고 나누고 싶기에 글을 올려 봅니다.

성경에는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보이는 주제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첫번째 예가 믿음(로마서)과 행위(야고보서)의 관계입니다.
두가지를 보완적으로 보려 하지 않고 분리적으로 해석하려고 할 때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복에 대한 성경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대상 4:9-10)를 실례로 들자면 예컨데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는 표현과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하는 기도내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한 것과 동시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여 복있는 사람의 모습을 이중적 잣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한국교회와 같이 무교와 샤머니즘에 영향을 받은 나라 속에서는 야베스의 기도가 단순히 물질적 행복, 성공, 형통으로 잘 못 비춰 질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며 또 그러한 요소를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에 복을 더한다'는 말속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다시말하면 복 중의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임마누엘)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요셉을 꼽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례적으로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속에는 단순히 어린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하듯 사업의 확장이나, 돈의 액수의 증가보다는 오히려 그의 삶속에서 누리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맛보며 환란(악)의 지경이 좁혀지기를 구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서도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질때 물질적인 지경의 확장도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을 야베스는 알았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은 무엇을 달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는 응답하시고 저 사람에게는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전자는 믿음이 있고 후자는 믿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전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구한 것이고, 후자는 예를 들어 1억이 있으면서도 물질적인 욕심으로 또 다른 1억을 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베스는 환란과 곤고와 근심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분으로 들어 주실 것을 믿고 구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응답하시지는 않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예수믿으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교훈은 심하게 말하면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이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고행의 종교는 아니지만 고난을, 심지어 순교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처럼 영에 속하여 구하는 것을 허락받는 자리에까지 이르러 유다지파에 속한 자손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자가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야베스처럼 살 수만 있다면...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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