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믿음의 압력을 높이십시요

첨부 2

  1. 5.jpg (File Size: 38.8KB/Download: 0)

날마다 행복한 하루를 위하여.... *흐.르.는.곡.바.다.에.뜨.는.별 우리가 잘 아는 헬렌켈러는 3중고의 고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듣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고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만 해당 되어도 '불행하다' 생각하고 비관내지는 절망할 터인데, 헬렌켈러가 살던 집 앞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 나와 헬렌켈러의 다른점이 무엇인가를 심각히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말하고 듣고 보는데... 그리고 아직 남은 것과 받은 복이 더 많은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아마도 내가 살던 집 앞에는 훗날에 이런 글귀가 써있지 않을까 부끄럽습니다. '나에게는 불행한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현재는 목회자 사모)인 우지끼 노부로 여사는 청소년 시절의 사고로 두 다리와 한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만난후에 작가가 되어 책을 썼는데 팔 하나만으로 쓴 그분의 책 제목은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입니다. 헬렌켈러와 우지끼 노부로 여사를 그토록 행복하게 하고 황홀하게 만들었던 행복의 원천은 무었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일하게 주님을 섬기고 사는데 무었때문에 우리의 삶의 내용과 믿음의 결과가 다를수 있는지 무거운 숙제로 남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편 68;19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분이라는 말씀이 섬광처럼 스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짐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한번이 아니라 날마다 짐을 짊어 지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매일 힘들고 버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등뒤에는 우리의 짐을 짊어 지시겠노라고 작정하시고 찾아오신 주님이 서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토록 힘든 이유는, 우리의 짐을 우리가 지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고 막막할때, 멀리계시거나 잊으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슬프고 통증이 심하여 그 사실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 어느 부모가(악한 부모라도) 사랑하는 자녀들이 힘들어 할때, 위험할때, 아플때, 모른척하거나 도망가거나 떠다 밀겠습니까? 번쩍 안아 가슴에 품든지 등에 업든지 하겠지요. 나는 시원치 않은 부모이지만 나의 딸이 아주 작은 짐을 들고 무거워 할때 비록 내게는 양손에 짐이 가득할지라도 딸 아이의 짐을 내게 얹으라고 말합니다. 나는 팔이 떨어지고 온몸에 비오듯 땀이 흐를지라도 딸 아이의 힘듦을 차마 보지 못합니다. 딸 아이의 짐의 무게로 나는 한층 더 힘들지만 그로인하여 딸 아이의 좋아하는 모습에 나는 더 무겁고 힘들어도 행복합니다. 부모의 행복은 자녀들의 기쁨과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무겁고 힘듦을 차마 보실수 없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날마다 맡기라고 요구(강청)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맡기지 못하고 끙~끙대며 살뿐아니라 위장에 구멍이 나도록 고민하며 걱정합니다. 우리는 이제 숱한 고난으로 맷집(?)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험악한 세월로 인하여 마음이 강팍해져 그런지 어디가 아파도 그냥 버팁니다. 삶이 버겁고 힘들어도 그냥 운명처럼 받아 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문제와 짐이 있어도 할수만 있으면 홀로 지고가는 일에 학습된듯 합니다. 깊은 상심과 바다만한 상처로 아파도 혼자 묵상하며 '시간이 약'이라 말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엉금 엉금이라도 기어 나와 엎드려야 합니다. 기도가 안 되거든 그냥 엎드려 신음소리라도 내다 가십시요. 그러면 주님은 우리가 '왜 엎드렸다가 가는지'를 다 아십니다. 생각과 고민 그리고 묵상만으로는 우리의 짐이 조금도 가벼워 질수 없습니다. 짐을 맡기는 기도 없이는 우리는 앞으로도 날마다 행복할수 없을지 모를 일입니다. 깊은 바다속의 수압은 대단하여 잠수함도 찌그러뜨릴 정도입니다. 그러나 작은 물고기는 유유히 그속에서 생존하며 살아 갑니다. 잠수함도 일그러지는 심해 속에서 작은 물고기가 버틸수 있는 이유는 바닷속의 수압보다 물고기 속의 압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향하여 불철주야 다가오는 무수한 압력들로 부터 우리가 터지고 깨어지지 않을 충분한 이유는 우리속의 믿음의 압력을 올리는 것입니다. 질병의 압력, 물질의 압력, 가시의 압력, 상처의 압력.....들이 우리를 쉬지 않고 누를때 우리속에 있는 은혜와 영성의 압력을 높이면 우리도 헬렌켈러와 같은 고백을 할수 있습니다.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그 사람들이 위대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속에 있는 믿음의 압력이 날마다 상승되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이 학습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짖누르는 무거운 짐의 압력보다 우리의 짐을 날마다 짊어지시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압력이 더 크면 하루 하루를 넉넉히 감당하고 이겨나가고 버텨낼수 있습니다. 그 짐이 태산 같을지라도... 그러나, 그 짐은 산고의 기도 시간을 통하여만 맡길수 있으니 기어서라도...숨이 붙어 있다면...기도의 무릎을 세워야 합니다. 기도가 안되실 겁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막힐때는 기도로 뚫는 길 외에는 별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호흡을 중단하지는 않듯이..기도는 그러해야 합니다. 기도를 못하고 안하는 중요한 이유는 기도가 덜 중요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때문입니다. 피곤과 바쁨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우리를 누르는 온갖 종류의 압력의 목적은 하나일지 모릅니다. 기도하라는 신호입니다. 기도처에서 우리를 보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믿음의 압력을 높이라는 신호입니다. 우리의 대안은 기도와 맡김뿐 다른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른 새벽 눈 비비며 기도의 무릎을 세우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늦은밤 피곤한 몸을 이끌어 기도실로 걸어가는 당신은 대단하십니다. 병든몸.. 무거운 어깨 추스려 기도실로 향하는 당신의 모습에 하나님은 감동하십니다. 우리가 이처럼 매일 매일 힘들지만 매일 매일 엎드려 기도할수 있다면 먼훗날에 우리의 집 앞에도 이렇게 씌여 질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과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록 그날이 더딜지라도...

♡푸른초장에 오시면 생명과 회복이 있습니다♡

<embed src="/files/attach/images/197/004/050/03e9299110054cd6f6c0e8777671577b.gif"autostart=true hidden=true loop=true>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