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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의 진리실험이야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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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리실험이야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기도(?)

주일학교 때 교회 다녔던 것 말고, 내가 예수님을 처음 믿은 것은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캄캄한 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청소년기에 나는 인생의 커다란 짐에 억눌려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옛날을 추억하며 그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나는 그때로 절대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암울했던 때, 시작한 신앙의 세계는 내게 경이의 세계였습니다. 물론 유치한 수준의 신앙이었지만 말입니다.

나는 내가 사는 고향이 싫었습니다. 어떻게 이 동네를 떠나서 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뒤로 산에 막힌 동네는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다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놀러 왔다가 밤이 되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동네에 온통 귀신이 득실거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소름이 좍좍 끼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는 젊은 사람이 무척 죽어나갔습니다. 지게를 지고 가다가 도랑에 처박혀 주기도 하고, 아무 이유도 알 수 없이 약을 먹고 죽기도 하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고가 나서 죽기도 했습니다. 뒷산에서나 어디서 여우가 캑캑거리며 울면 꼭 사람이 죽어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혼불을 보았다고도 하고, 귀신이나 도깨비를 보았다고도 했습니다. 나는 한번도 그런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마는 그렇게 음침한 우리 동네가 싫었습니다. 도시에 가까이 있으면서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곳, 산에 꽉 막혀 있는 곳, 어떻게 이곳을 벗어날까 하는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설교를 들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여기에서 저리 옮기라 해도 옮길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은 어떤 청년이 이를 실험하기 위해 기도했더니 글쎄 그 산이 개발이 되어 없어졌답니다.” 그 설교를 들은 나도 그것을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밑져 봐야 본전이다. 기도하자!” 나는 뒷산에 올라 앞산이 없어지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곳은 개발이 될 장소도 아닌 것 같고, 이런 기도가 옳은 기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다음, 그 산 너머에 대학이 생겼습니다. 좋지 못한 장소 인 것 같은데 대학이 생기더니 십 여 년 전에는 앞산까지 밀어버리고 그곳에 교사(校舍)를 지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경제성이 없는 땅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대학교의 땅이 되었습니다. 내게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 내가 살던 집에 가서 보면 아름다운 앞산은 사라져 버리고 학교 건물이 답답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앞산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았을듯합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절대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겠지요. 이 일로 인하여 나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기도에도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서는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기도응답이 지연될 때에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야 기도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아울러 기도해야 할 것은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하여 감당할 힘까지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천바람직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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