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읽을만해서 퍼온글> "사월이 어째서 잔인합니까? "

첨부 1


잔인한 달에 피는 꽃 라일락

          
<읽을만해서 퍼온글> "사월이 어째서 잔인합니까? "

어느 해 사월의 일입니다. 영어 최상급을 설명하면서 의도적으로 사용한 엘리어트의 유명한 시구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을 영어로 써놓고 우리말로 해석하자마자 한 아이가 걸려 들었습니다.

"선생님, 사월이 어째서 잔인합니까?"
"왜 잔인할까?"

질문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은 교육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질문자가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지요. 교사도 답변을 준비할 시간을 벌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숨쉬기가 불편해질 만큼 감성이 풍부한 교사라면 더욱 여유가 필요합니다. 교육은 감동이지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런 식으로.

"밤 2시가 잔인합니까, 아침 7시가 잔인합니까?"
"아침 7시요."
"왜죠?"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니까요."

평소 수업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눈이 크게 떠져 있습니다. 공감하는 것에는 반응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 순간을 잘 포착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참된 지식을 아이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는 것이 교사의 일입니다.

"4월이 잔인한 것도 긴 겨울의 잠에서 깨어나 꽃을 피워야하기 때문입니다. 꽃을 피우려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 끝까지 양분을 날라야 하는데 그 수고가 싫은 나무들은 겨울이 오히려 그립겠지요. 하지만 잔인한 4월은 오고야 말지요. 아침이 오고야 말 듯이. 눈부신 아침을 즐겁게 맞이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렵지도 않아요. 조금만 일찍 자면 되니까요. 그런 수고조차 하지 않겠다면 행복하고는 무관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수고와 고통 없이 쉽게 꽃을 피우려는 아이들은 이런 일화를 통해서 조금씩 현실의 눈을 뜨기도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낮은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sorrow(슬픔)란 단어를 설명하다가 이렇게 툭 말을 던져 보았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집니다."
"왜 그래요? 왜 아프면 성숙해져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가능해지면 '슬픔은 인간을 걸러준다'는 <시학>의 저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명구도 큰 어려움 없이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지지요. 그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자기정화라고 하지요.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문학이 그런 자기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소화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슬픔이 와도 많이 불행하지는 않겠지요."

며칠 전에는 한 아이에게 메일 편지를 받았습니다. '집에만 있으면 자꾸만 화가 나고, 누구와도 말하기도 싫고, 가족이 말을 걸어오는 것도 싫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해서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사춘기 소녀들이 겪는 흔한 증상으로만 여기기에는 증세가 다소 심한 듯했습니다.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떤 말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문득 '낯설게 하기'라는 문학 용어를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익숙해져 있는 사물을 낯설게 만들면 그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라고 말합니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문학이론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한 대목이 있어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반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결혼 후 그녀의 모습을 너무 긴 시간 동안 보게 된 나머지 그 모습에 익숙해져서(자동화되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즉 그녀가 낯설었을 때의 그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지각이 자동화되어서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이때 그녀가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는 낯설게 만들기(탈 자동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날 제가 제자아이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도 이와 비슷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세상에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떻게 아내와 만나게 되었을까?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내가 사랑하고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도 그래. 세상에 많은 학생들 중에, 그리고 세상에 많은 선생님들 중에 이렇게 한 시대에 태어나 같은 교실에서 1년 동안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고 귀하게 느껴지거든.

하물며 너를 몸으로 낳아주신 부모님과 너의 인연은 얼마나 귀한 것이냐? 너에게 생명을 주시고, 언젠가는 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시게 될 부모님께 네가 먼저 사랑의 말을 전하면 어떨까?'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기대 없이 던진 말도 때로는 날아가 아이의 가슴에 꽂히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가족들한테 맘을 먼저 열고...말을 걸었어요...에헤*^^*앞으로 제가 많은 노력을 해야될 것 같아요..'

이런 답장을 받는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해마다 오는 봄처럼, 해마다 오는 아이들을 늘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교사는 행복합니다. 다만, 아이들을 낮은 눈높이에서 만날 준비가 필요합니다.

<퍼온 글입니다(안준철님의 글).>

          
순천바람직한교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