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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느 교도관이 불러주는 부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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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도관이 불러주는 부활의 노래
                                                                        
불현듯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지, 일면 신출내기 교도관이었던 나는 참 당돌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오늘, 그에게 불러주었던 그 노래가 한 생명에게 부활의 소망이 되었고, 또한 내 온 삶을 통하여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는 이유가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용기를 내어 그 이유를 여러분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도무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이야 노래방이란 최신 기기를 이용하여 어른도 흉내내기 힘든 신세대 가수들의 빠른 노래 말을 잘도 따라 부르지만 내 경우는 그 쉬운 동요 한 구절도 신나게 불렀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다닌 언덕빼기 예배당에서 곡조 없이 힘차게 부르던 어린이 찬송가가 그나마 내 노래실력의 전부였습니다.
'동무야, 모여라 이 동산에서 우리의 뛰놀 곳 여기에 있다. 길에서 헤매는 어린이들아 생명의 밝은 빛 여기에 있다...'

그러던 내가 마침내 노래 실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2학년 무렵, 음악 선생님은 믿음 좋은 처녀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 다니는 학생들에겐 알게 모르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셨는데 가창 시험을 앞두고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특별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부끄러워하는 내게 먼저 자신감을 심어 주셨습니다.
"넌 잘 부를 수 있어! 어디 한 번 이 곡을 불러봐."
'세월은 가도'란 가곡이었습니다. 느린 듯 하면서도 부드러우면서도 애잔한 멜로디로 이어지고 고음처리도 원만한 곡이었습니다.

'세월이 가면은 잊는다지만 아 세월이 가면은 잊는다지만 임은 가슴속 살아있는 아련한 별...'
지금도 이 노래는 내 십 팔 번 곡으로, 공개적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 자리에서는 주저함 없이 부르고 있습니다. 때로 가슴이 답답하고 무너지고 싶은 순간에 여지없이 그 별은 내 마음을 비추곤 합니다. 덕분에 나는 구십 몇 점이라는 내 생애 최고의 음악 점수를 받았던 흐뭇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교도관이 되었습니다. 뭘 모르고(?) 시작한 교도관. 흔히 이곳을 음지로 바라보기에 자주 따스한 햇볕이 그립고 때로는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을 태우고도 싶은 간절한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20년이란 세월이 참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그 날은 어떤 수용자의 범칙 행위로 인해 나는 몹시 괴로운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교도소는 늘 경계심을 가지고 근무해야 하는 곳 아닙니까? 저녁 근무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사동(舍棟) 책상에 엎드려 기도하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닙니까? ㅈ ㅎ 이라는 형제였습니다.

ㅈ ㅎ 는 참 잘 생긴 용모에다가 건장한 체구로 호감 가는 갓 스무 살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파렴치한 범죄의 주인공이었는데 그의 범죄기사는 굵은 글씨로 사회면을 장식했었습니다. 그 순간 왜 하필 그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나는 애써 그 모습을 지워보려고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요시찰로 지정되어 그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워 독방에 수용된 상태였고 그가 언제 무슨 행동으로 말썽을 피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경계를 늦추지 않던 터였습니다. 더군다나 낮에 한 수용자가 일으킨 소란 때문에 마음이 상해있던 터라 중범자인 그의 얼굴이 반가울 리 만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정작 그는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을까, 아니 죽고 싶은 마음뿐 일 거야. 그런 저런 생각이 스쳐가더니만 문득 '너도 그를 미워하지?'하는 음성이 들려오는 게 아닙니까? 저는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예. 미워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흉악범이야말로 선량한 시민이 다수인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 시켜야 하기에 사형제도는 당연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터였습니다. 어쩌면 그도 그렇게 자신의 죄 값을 달게 받는 일 만이 남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자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네가 미워할 수 있겠니?'
아,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 다소 공격적인 그 질문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그 밤은 지나갔지만 그 질문은 계속 내 귀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활 주일 전 날 밤이었습니다. 일정대로 야근을 하는데 그의 창백한 얼굴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내 속에서 한 노래 가사가 시나브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불현듯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생각이 밀려오지 뭡니까? 할 수 없이 연습삼아(?) 그 노래를 나직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한번 부르고 두 번 부르고 세 번 부를 때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그렇게 눈물겹거늘, 나는 애써 그 사랑을 부인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신이 부끄럽던지요. 따져보면 나도 그에 못지 않은 죄인인데... 세월은 거침없이 흐르고 나는 그를 잊고 있었습니다. 어느 부활절 무렵 나는 두툼한 그의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최 선생님, 저는 그 때 죽음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나는 생명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최 선생님은 그 후 제게로 찾아와 연습하는 거라며 그 노래를 끝까지 가르쳐주었지요. 감사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살리기 위해 내 죽음이 되어주셨다는 그 분. 그 사랑이 크기에 비록 기약없는 무기수의 삶이지만 내게 평화와 기쁨이 있음을 꼭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 글은 월간 낮은울타리(2002.4)라는 잡지에 부활절 특집으로 실린 글이었음을 밝힙니다.

* 다음 사이트로 오시면 다른 컬럼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독자(독자가입)로 초대합니다.
   http://column.daum.net/daman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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