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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크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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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앙앙~ 과자 사 주세요~ 네~"
나는 그날도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맛난 과자랑 껌이랑 쫀드기 등을 먹고 싶어서 엄마를 조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나의 조름의 강도가 쎘었는지 엄마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리고, "은아야,  이것 좀 봐" 하면서, 무언가를 손에 들어 보이셨다.
그것을 보고 나는 울음을 그치고야 말았다.
"자, 우리 집에는 지금 이 돈 밖에 없어."하시면서, 엄마는 2000원을 보이셨던 것이었다.

실상, 그 돈에 우리 집 전 재산일 리가 만무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리고 순진한(?) 나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렸다. 
그러면서, 순간 걱정이 엄습하면서, 이 사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 이후 며칠간은 과자와 껌 등을 끊고
금과(금할금,과자과?)의 시간을 스스로 선택을 하였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혀 과자에 대해 말하지 못하면서,
옆집 아이들이 과자를 먹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물론 금과의 시간은 얼마안되어 사라졌다.
과자를 향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을 뿐더러,
엄마가 2000원 이상의 돈을 쓰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ㅠ.ㅠ

          
어릴 적에는 눈에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시기이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금방 불안을 느끼듯이,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시기이다. 또한 개념에 있어서도 가시적인 것이 중요하고, 현재가 중요한 시기이다.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시기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흑백논리이상의 것을 받아들이기 힘이 들었다. '이것, 아니면 저것'. 그때, 누군가 내게 이것과 저것 중 한가지를 말해주지 않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또는 제 3의 것'라는 명제를 주었을 때 나의 작은 머리로 그것을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다. 내게는 그것을 생각할 만한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성장함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기고, 이해하게 되고, 알 수 있게 되었다.

신앙이 어린아이 때에는 알게 모르게, 그분을 내가 가진 개념 안에서만 이해하려고 하였다. 하긴, 내가 그렇게 밖에 그분을 내 안에 수용할 수 없는 개념을 가졌었으니 말이다. 신앙이 성장함에 따라,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 새로운 공간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전혀 새롭게 그분을 인식하게 되었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이 책에서, 스크루테이프는 지옥심연숭고부차관이라는 악마이고, 그의 조카 악마에게 쓴 편지이다. 여기서, 환자는 그리스도인을 말하고, 원수는 예수님을 뜻한다.

          
기도하는 네 환자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아는 원수의 이런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어. 그가 마음을 모아 기도를 바치고 있는 대상을 찬찬히 들어보면, 아주 웃기는 요소들이 엄청 뒤섞여 있는 합성물이 보일게다. 일단 원수가 '성육신'이라는 망신스러운 사건을 벌이는 동안에 보여 주었던 모습에서 나온 이미지가 들어 있을 테고, 다른 두 위격에 관해서는 더 모호한-짐작컨대 꽤나 미개하고 유치한-이미지가 들어 있겠지. 숭배의 감정(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신체적 감각들)에서 나온 이미지들도 일부 있겠고, 환자는 주관적인 숭배의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그것을 제가 곧 경외하는 대상의 속성으로 생각해 버리거든.

          
이 글에서처럼, 신앙이 어릴수록, 하나님을 형상화하려고 은연중에 노력하게 되고, 그분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며, 그분을 느끼기를 원하며, 심지어는 기도 중에도 허상을 붙잡고 기도하기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내 개념 안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의 예수는 너무 작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한계 안에 가둘 때 그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시고 위대하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성장이란 '그분 그대로의 그분'을 알아가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그분을 믿는 것일 것이다. 그리할 때, 진정한 그분을 모습을 알 수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물론, 그 완성은 천국임을 믿는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가 약국에서 일을 할때 가난한 이에게 자신이 전재산을(반크라운) 주었다. 그리곤 그날 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주는 자는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꾸임이 오래 가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일 점심부터는 굶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날 아침'에 10실링(반크라운의 4배)이 든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그가 그 '기도를 하기 전'에 이미 발송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어떠한 기도를 드릴지를 이미 알고 계셔서 그 전에 작업을 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기도하기 전에 내게 있어야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이미 예비하신 하나님.
내가 무엇을 기도할 지조차 아시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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