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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 신앙이야기 (제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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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랑으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이야기 또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겸손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오랜 동안 앓아온 병력(病歷)으로 인하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조심하겠지만 혹 실수로 잘난 척 하더라도 사랑으로 용서 바랍니다.

          
*** 성도이상돈의 기독교 입문 ***

제가 처음 교회에 나가서 선물로 성경책도 받고 여럿이서 나란히 강대상 앞에 서서 목사님이 뿌리던 물세례를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30년 전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신앙경력 30년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절에 따라 다닌 것을 생각하면 “모태신앙” 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절에 다닌 것은 신앙도 아니라 구요? 글쎄요.. 저쪽 동네에 가면 많이 섭섭해 할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지금 불교교리 어쩌고 운운하며 마치 뭔가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것이 큰스님들께 많이 부끄럽습니다. 특히 제가 존경하는 고모님이나 성철스님 같은 분께는 더 더욱..

그러나 제가 이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 시기가 1972년부터이고, 나름대로 불교교리에 심취해 있다가 어린나이에 기독교가 궁금하기도 하여 교회에 잠깐 발을 들여 놓았는데 제 나름대로 그때부터를 신앙생활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면서 처음 받은 인상은 어! 별거 아니네..! 였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아마도 그 중심 사상이 불교교리와 완전히 딴 세상인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고 너무도 흡사한 부분이 많아 어린나이에 그랬을 겁니다. 아무튼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들켜서 서울로 공부하라고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짓 한다고 무지하게 혼나고는 그러지 않아도 실망하고 있던 때라서 다시금 틈틈이 “참선”에 들어갔던 겁니다.

그리고 어느 땐가 기억엔 없지만 뭔가 이상한 체험을 하고나서 아~ 그런 거 였구나. 하는 생각했는데. 혹시 스님들이 쓴 책들을 접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어떤 책을 보다보면 오도(悟道)(*불교의 진리를 깨닫는 것)를 이루었다고 “갈”어쩌고 하면서 내용은 생략한 채 얼버무리는 걸 본적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설명하기 힘든 체험들은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있었고 그런 것들이 대부분 면벽수행(성철스님이 많이 했다는 수행법)을 한답시고 가부좌 틀고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일어난 일들인데 전에는 그런 것 들이 무지하게 대단한 건줄 알았습니다만, 철들어서 보니 부끄러운 과거일 뿐이더군요.

아차! 이거 제이야기를 하기위해서 잘못하면 큰스님들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도 있겠군요. 결코 진정한 오도(悟道)를 이루신 분들을 폄하할 뜻으로 쓴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실 걱정할 일은 아닐 듯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오도(悟道)를 이루신 분이라면 온전한 자비심(慈悲心)을 갖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제 드디어 S목사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참으로 S목사님 만나기 힘드네요. 그렇습니다. 이처럼 교만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만난 S목사님이기에 저쪽에 계신 분들(말보다는 주로 주먹을 앞세우는 분들)과 친하게 지내시다가 어느 날 하나님 만나 회개하시고 뒤늦게 철들어 신학공부 하신분의 설교가 귀에 들어 왔겠습니까?

저를 찾아와서 설교 중에 기억에 있는 한 대목이 있는데 이런 겁니다. S목사님 젊은 시절에 잘나가던 때를 회상 하시며 그러나 그런 것이 너무도 부질없는 짓이고 지금 하나님 만나 회개하고 나서 보니 너무도 부끄럽고 그러니 이 선생(그때 목사님이 절 부르던 호칭입니다.)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아요..

그런 설교를 듣고 제가 어땠을까요? 당연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S목사님이 잘나가던 시기의 이야기를 나의 잘나가던 시기와 한통속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불쾌하기도 했고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되면 이러이러 하게 착하게 살수 있다고 하는 것 들은 저는 이미 대충 그렇게 살았던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셨다고 하시는 부분은 제가 이미 여러 번 체험한 내용과 별반 다른 게 없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자연스럽게 그랬을 겁니다.  "목사님 잘나가던 시기의 이야기는 부끄럽다고 하시면서도 은근히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고 시작하여 슬그머니 화제를 바꾸고 신비한 체험이야기 등을 주제로 이야기 하다가 주도권을 잡아 나갔을 겁니다. 그러다가 헤어지고는 한 적이 몇 번 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면 또 돌아가셔서 기도 많이 하셨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가 아주 건방지고 형편없는 것 같은데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어른신들 공경은 조금 할줄 압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만, 어르신들 공경하기 아주 쉽거든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냥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면 됩니다. 하하하...

일찍이 그런 걸 통달하고 있었기에 어르신들 말씀하시면 그냥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편입니다. 그러나 제 주관이 뚜렷한 편이라서 고분고분하게 말은 잘 듣고 있어도 들으면서 제 생각에 반(反) 한다고 생각되면, 어르신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 어떻게 어르신 불편하지 않게 반박할까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어르신 말씀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자연스럽게 반박을 시작합니다.
최대한 저자세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결론은 항상 이제 더 이상 말씀을 할 수 없게 만들고는 하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기본원리 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으므로 제 생각에 반(反) 했다는 것은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격다짐 했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S목사님께서도 비슷한 우(愚)를 범하신 겁니다. 나름대로 신앙의 기본원리에 일가견을 구축(構築)하고 있던 제게 어르신이고 또한 목사님이시라는 것으로 우격다짐 비슷하게 쉽게 말해서 무조건 교회 나와라. 그래야만 구원 받는다고 하셨으니 늘 제 반박논리에 압도 되셨던 겁니다. 그랬을 뿐이지 눈에 띠게 어르신 불편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뭘 그렇게 쓸데없이 잘난 척은 해가지고 아직도 S목사님께 송구스럽다고 느끼고 살아야 하는가 말이야. 말이야 라 구요. 하지만 참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열심히 목회는 하셨지만 S목사님께서 진실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셨던 분으로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동안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었군요. 사실 제가 계속 불교 이야기 하니까 절에라도 다닌 줄 아시겠지만 어려서 어머니 따라 다닌 후로 다시 말해서 제가 이 시점을 신앙생활의 시점으로 본다고 한 때로부터 교회는 간적이 있어도 절에 가서 절하고 시주하고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늘 “불자”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은 했습니다. 즉 마음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불심”을 키워 “성불”하고자 하는 건데 참으로 욕심도 더럽게 많았던 게지요.. 시주하기 싫어서 절에도 못가는 주제에 무슨... 생각하다보면 참 우습더군요.

이런 형편이다 보니 아내가 교회 다니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언젠가 면벽수행 중에 뭘 느끼고는 “갈” 한번 하고나서 그래 불쌍한 중생이 교회 다니다가 언젠가는 내 뜻에 따라 “불자” 가 되겠지 하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늘 여유 있게 그랬습니다. “부인 마음대로 하시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 하고 끝냅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가호가 늘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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