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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십자가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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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으면 부활절이라 합니다.

  부활절 전 1 주일을 고난 주일이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도와 금식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과연 얼마나 성경 적일까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함께 동참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아니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그 고난은 인류의 죄값을 치르는 고난으로 전혀 죄 없으신 주님의(히9:14) 몫입니다.(요3:16) 죄가 있는 인간(롬3:23) 50억이 그 고난을 참여한들 하나님의 의로움이 나타나겠습니까?(롬5:26) 주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16:24)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는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각자 생각하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와 부활에서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 까요?' 라고 물으면 '그런 질문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둘 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치우쳐져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렵니까?

  보통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이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십자가에 매여 있습니다.

  한 번 예를 들어볼까요? 십자가와 관련된 교회의 행사가 고난 주일 7일, 어떤 교회는 사순절 40일을 지냅니다. 반면에 부활주일은 1일 만 지킵니다. 또 십자가와 관련된 찬송은 1년 내내 거의 부르지만 부활의 찬송은 부활절 1일만 부릅니다. 찬송가를 보아도 십자가의 내용을 담은 찬송은 부활과 관련된 찬송보다 20배가 넘을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예배당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십자가의 모습은 계속 보지만 부활의 표시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도 살펴보면 부활의 감사보다는 십자가와 관련된 죄의 고백이 더욱 많음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탄은 십자가를 십분 활용하여 많은 기독교인을 왜곡된 신앙을 낳고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십자가의 형상이나 표시는 고대 바벨론 시대부터 이집트, 그리스, 로마, 잉카, 인도 등 세계 각처의 종교 심벌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우리 나라 무당들도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방 종교의 기원이 사탄이라면 현재 기독교를 나타내는 십자가는 결코 기독교적인 것이 못된다고 봅니다. 특히 십자가의 형상을 의도적으로 숭배는 안할지라도 그 것으로 오는 영향은 절대 작은 것이 아니라 보여집니다. 광고의 효과가 라디오가 나을까요? TV가 나을까요? 당연히 눈으로 보는 TV라고 말씀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십자가는 우리가 보면 볼수록 손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보면 볼수록 십자가의 영향은 폐해가 심각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살펴볼 때 그러한 증거를 많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러한 말을 하느냐?'고요? 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와 부활을 나란히 써 놓고 그 아래에 무엇을 얻을 수 있

는지 써 봅시다.



                 십자가                   부활

                    죄                      용서

                  슬픔                     기쁨

                  심판                     구원

                  죽음                     생명

                  고난                     소망

  이제는 조금은 이해가 되십니까? 현재 주님을 믿는 우리가 어느 아래에 서 있습니까? 이미 십자가의 신앙을 지나 부활의 신앙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십자가의 신앙 안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서조차 집요한 계략으로 우리의 주님의 부활로 얻은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이미 구원받은 자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탄의 술수가 무서운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활절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어쨌든 좋습니다. 많은 교회가 하루밖에 되지 않는 부활절의 부활의 기쁨을 사탄은 저녁이 되면 앗아가 버립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새벽 부활 예배를 드리고 오전 부활 예배를 드려서 그 기쁨이 커질 만하면 저녁 예배 때 주의 만찬으로 부활의 기쁨을 십자가의 슬픔으로 바뀌어집니까?

  그렇다고 제가 십자가의 신앙을 버리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통과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세를 배우자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그의 기록한 성경 곳곳에서 부활의 기쁨이 날로 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잊지 못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였습니다. 자신이 엄청난 일을 감당하고도 오직 자랑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며 겸손을 보였습니다.(갈6:14) 바울은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에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에서 치우침이 없는 신앙을 갖자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초대 교회는 모일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만찬을 하였던 이유가 늘 부활의 기쁨에 있으므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이 허망한 신앙을 일깨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은 앞에서 밝힌 대로 늘 십자가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만찬을 가끔 해도 무방(?)하다고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십자가와 부활 모두 중요합니다. 저는 잃은 부활의 신앙을 찾아 주님의 말씀대로 "자유함"을 누리(요8:12)고, 너무 기쁜 나머지 십자가의 은혜를 잊을까 두려워합니다. 이제 교회는 초대 교회처럼 1년 내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1년 내내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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