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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평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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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평안했을까?
    
헨리 나우웬은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라는 곳에서 정신 장애자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여섯 명의 장애인, 세명의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한 집에 살게 됩니다.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과 밤낮으로 함께 살면서 그가 가진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불쌍한 사람들, 이 불쌍한 식구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평안이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과연 정상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가 추구하는 평안이 그들의삶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가?’  

그의 이러한 의문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동자 밖에없는 '아담'이라는 한 장애인을 만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아담은 25세의 청년으로 먹는 것과 씻는 것과 배설하는 것과 치료받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했고, 웃는 것과 우는 것조차 눈빛으로만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는 매일 간질로 인한 발작을 일으켰고 점점 그 병세가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나우웬은 자신이 오랫동안 학생들과 신부들에게 가르쳐왔던 ‘평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는 뒤틀려가는 몸으로 신음하는 아담을 보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과연 평안했을까?’    

우리는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참된 하늘의 평화는 오직 예수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의 왕은 지금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안했을까요?  

나우웬은 자신이 그동안 믿어왔고 얻고자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평화를 아담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신 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버리신 분, 두 팔을 벌리고 가슴을 벌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인류를 위해 다 포기해버리신 분, 그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그 누구보다 많이 가져야할 필요도 없고 그 누구보다 높아져야 할 필요도 없으신 분, 자신이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포기하신 분, 자신의 목마름조차 해결할 수 없었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물 한번 닦아 줄 수 없었던 그 분 -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가장 가진 것 없는 모습으로, 가장 능력 없는 모습으로 우리의 평강의 왕,평화의 주가 되십니다.  

나우웬은 무엇인가 선한 일을 이뤄보겠다고 장애인들을 찾은 자신 앞에 사지를 벌리고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내 놓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개방하고 모든 것을 맡긴 채 평온한 눈빛으로 오직 자신만을 묵묵히 바라보는 청년 예수를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의탁함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도 주저하지도 않는 자유로운 아담을 보면서 오히려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붙들고는 한없이 불안에 떨고 있는 불쌍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은 미안한 일 일까요?  모든 일의 주권을 예수님에게 드리는 것은 염치없는 일 일까요?  나의 모든 삶을 개방하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내 삶의 어떤 부분은 내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내가 그 모든 것을 지고 신음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끙끙거리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 우리 주님에 대하여 미안한 일일까요?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주님 앞에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우웬은 아직도 자신에게 참된 평안이 없었음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참된 평안을 간구하게 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안전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합니다. 안전한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은가? 라고 질문합니다. '너는 과연 안전한가?  너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가?  너의 가정은 안전한가?  하고 묻고 또 묻습니다.  그리고 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속에 찾아오신 참된 평안을 포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고난이 주간에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찾아오십니다. 그 예수님의 평안을 맛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예수님의 화평케 하시는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갈말 식구들과 이땅의 참된 평안을 기원하며 필라에서 가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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