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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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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과 개혁사>에서 역자인 백금산 목사님의 분석 내용을 요약, 발췌했습니다.

          
18세기 미국 제1차 대부흥운동의 주역으로 쓰임 받은 에드워즈는 자기 시대의 부흥 현상을 성경의 근거를 중심으로 신학화함으로써 이후 교회사에 반복되어 나타난 부흥에 대한 부흥 신학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따라서 에드워즈에게는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개혁 신학과 청교도 신학 그리고 18세기의 부흥 신학이 탁월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에드워즈는 교회 역사상 신학적 면과 체험적인 면 양면에서 가장 깊이가 있으면서도 균형 잡힌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게다가 에드워즈는 개인적으로 신학자, 목회자, 설교자, 부흥사, 철학자, 과학자, 역사가, 심리학자로서의 뛰어난 자질들도 고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다방면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에드워즈의 개인적 자질들은 결국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인물됨을 교회사의 거장인 어거스틴이나 칼빈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사 안에서 그 역사적 중요성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에드워즈가 어거스틴이나 칼빈에 비해 다소 뒤떨어집니다. 그러나 개인의 경건과 신학의 깊이에 있어서 그는 어거스틴과 칼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날 목회자 및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목회적, 신앙적 유익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에드워즈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에 비교하고,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교할 수 있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교하고 싶습니다"(로이드 존스 1990:346)

제가 믿기로, 어거스틴과 칼빈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역사 속에 허락하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어거스틴은 교부 시대에, 칼빈은 종교개혁 시대에, 에드워즈는 미국 교회의 초기 시대에 있어서 각각 그 시대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남다른 천부적인 재능을 각각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신학의 천재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신학에서 발견되는 지적 특성들은 서로 다릅니다. 즉 어거스틴의 지적 특징은 무엇보다 폭넓은 방대함이고, 칼빈의 특성은 간결 명료함이며, 에드워즈의 특성은 깊은 심오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지적 특성들은 각자 자신들의 시대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에드워즈의 70개 '결심문'은 에드워즈가 18세쯤 회심한 이후 약 1년 동안 자신의 신앙성숙을 위한 결단과 끊임없는 자기 반성을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또한 에드워즈의 '일기'는 이러한 결심문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 결심문을 기록하던 같은 시기부터 쓰기 시작해서 자서전이 끝나는 때쯤에 끝을 맺습니다. 일기 속에 나타난 기간은 19세부터 33세 때 까지의 약 24년 동안이지만 전체 148일 분량의 일기 가운데서 22세 이후의 일기는 13개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에드워즈의 일기는 대부분 20~21살 때의 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에드워즈의 '자서전'과 '결심문' 그리고 '일기'를 읽으면서 에드워즈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신앙성숙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저는 에드워즈의 모습 속에서 성도다운 성도의 모습, 성숙한 성도의 모습,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의 모습,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에드워즈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 지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열정적인 거룩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20살 때의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결심문을 작성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모든 측면에서 인격의 어떤 부분이나 어떤 환경하에서도 언제나 성도다운 참 빛을 비추이며, 탁월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는 참으로 완벽한 성도가 세상에 단 한 명 있다고 가정할 때,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힘껏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자"(결심문 63)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에드워즈의 이러한 결심은 단지 그가 스무 살의 어느 날 하루 일시적인 감정으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 결심은 바로 에드워즈의 전생애를 통한 생애적 목표였습니다.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하고 구원을 받고 난 이후 죽을 때까지 전생애를 통해 품고 있었던 가장 큰 소원은 한마디로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이 지상에서 허락하시는 최대한의 거룩한 정도까지 도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거룩한 야망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에드워즈의 생애는 일평생 동안 '열정적으로 거룩을 추구하는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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