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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 신앙이야기 [제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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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감사를 드립니다. 이야기 시작합니다.

          
앞장에서 제가 “권사님께서 그러시면 되겠습니까?.” 라고 아라비아 숫자도 모르시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했을 때 사실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장모님께서 저를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렇게 제가 장모님께 말씀 드렸을 때 장모님으로부터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장모님과 함께 같은 교회에 출석하시는 양권사 님이 계신데 그분도 장모님처럼 까막눈 이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는데 갑자기 훤하게 성경책이 떠오르면서 글자들이 보였는데 그 뒤부터 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그 뒤로 양권사님은 벌써부터 혼자서 책도 읽고 찬송가책도 읽고 한답니다. 그래서 장모님께서도 나도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지금도 그렇게 기도드리고 있답니다. 벌써 10년은 됐을 텐데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다른 건 다 응답해 주시면서 아직까지도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시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우신지 눈물이 다 글썽 글썽 하시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참으로 너무도 순수하시고 아름다운 영을 가지고 계신 이런 저의 장모님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드렸어도 하나님께서 왜 끝끝내 글을 읽을 수 없게 하셨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양 권사님께서는 또 왜 그렇게 하셨는지도 잘 압니다. 아마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모두들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구차스럽게 저의 견해는 생략합니다. 하여튼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장모님께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 하셨는데 아직도 글을 읽을 수 있게 안하셨나 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마도 사위가 가르쳐 드리게 하려고 그러 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글이나 아라비아 숫자 같은걸 아는 게 대단히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저한테 한번 배워 보실래요.. 사실 알고 나면 양권사님 이 읽게 된 한글이 란게 아주 별거 아니란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사위”

이렇게 해서 10 여년전에 제가 장모님의 스승까지 됐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이러니 장모님이 그 많은 자식들 중에서 저를 제일로 꼽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후일담입니다., 그 이후로 장모님께서 혼자서 마음대로 전화 걸 수 있게 되셔서는 “야! 이것만 알아도 엉뚱하네(엉뚱하다는 말은 뭔가 좋으실 때 가끔 쓰십니다.)”

하시고는 고향에 내려 가셨습니다. 가셔서는 여기저기에다 전화 많이 하셨나 보더라고요. 그것도 딸들에게(딸들이 모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지요.) 전화 신나게 거시다가 전화요금 많이 나왔다고 며느리에게 한소리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전화도 마음대로 못하고 계셨었는데 다행히도 제 아내보다 효심이 조금 더 많은 처제(KT에서 중견간부로 근무 중임)가 전화요금 문제를 해결해 드렸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아주 좋아라 하시며, 우리 집에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를 하시는 편입니다. ( ~ 당연하지 스승님 댁인데 라구요.... 원 민망 시러버서 ㅎㅎㅎㅎㅎ)

자 이정도 말씀드리면 믿어지시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아내에게 교회 다니지 말라고 했던 것은 순전히 올바른 신앙을 갖기 원했던 것이지 다른 뜻이 없었던 겁니다. 아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제가 불자라서 기독교를 핍박하려는 뜻은 더욱이 없었구요.

또 만약에 그랬더라면 그 옛날 제 아우 “이장로”가 술하고 왕창 친하고 또 담배 하고도 많이 친하게 지내면서 저쪽 서울 역 대합실 쪽에 잠자리 마련하고 싶어 했을 때 “그러지 말고 교회에 한번 나가 보지 않을 래 하면서 꼬드겼겠습니까?..” 지금도 아우는 그걸 기억하고 있더 라구요. 작은형이 자기에게 교회 다녀 보라고 했었다고요.

여기서 잠깐 한 말씀 더 드리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글을 써오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는 많은 분들께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고 늘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답 글 올라온 걸 볼 때면 사실 좀 뜨끔 하더군요. 혹시 내가 실수 한 게 아닐까 하구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순전히 격려들만 해 주시는 것 같아 너무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은 갈수록 목사님들을 은연중에 핍박하는 것으로 많이 비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분명히 말씀 드렸듯이 "제 신앙의 진실"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진행상 그럴 수밖에 없음을 간간히 말씀 드렸지만, 다시 한번 밝혀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본론을 말하라고 조급해 하시는 분이 계셔서 본론을 잠깐 언급한다면, 그것은 “참사랑”에 대한 저의 견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머리 잘라내고 꼬리 잘라내고 그냥 쉽게 어느 날 제가 깨닫게 된 것을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럴까도 생각 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써 나가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습니다.

쉽게 말해서 흔해빠진 것들 다시 말해서 은혜 받은 이야기들.. 즉 어느 날 문득 이상한 걸 체험했다느니 훌륭한 목사님만나 깨우쳤다느니 부흥회에갔다가 은혜받았다느니 어쩌고 하다가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였어”  그런 이상한 환상이나 체험 혹은 방언이 터져서 읊조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뒤 잘라버리면 역시 똑같이 어떤 환상을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여 장황하게 장사 하려는 그런 것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을 것 이 분명 해 보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사실은 제가 이러한 경험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우려의 생각들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경험들이 아주 잘못된 것이고 아주 나쁜 것으로 폄하하거나 깍아 내리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니까 제발 오해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간간이 답글 올려 주시는 고마운 분들을 보면서 답글들이 진정으로 “진실한 참사랑” 의 마음이 담긴 글들이 대부분 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들도 있다는 것을 죄송하지만 제가 잘 압니다. 답 글 올라온 글들을 통하여 그 이면의 생각들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너무도 감사하게도 “참사랑”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깨닫고 알게 된 후부터 제가 K선배로부터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이 별게 아니었음도 새삼 알게 되었다면 설명이 될 겁니다.

그냥 살아계신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하고 계셨고 지금도 함께하고 계시고 영원히 함께해 주실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고 나니까 갈수록 제 영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고, 따라서 이웃들 모두와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도 어렴 풋 이나마 발견 할 수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이 온전히 믿어지기만 한다면, 갈수록 마음속에 있는 몇 십년 묵은 상처 까지고 깨끗이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까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3~4년에 걸친 저의 산 체험이기 때문 입니다.

이상한 환상이나 또는 어떤 체험들을 하고나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접떨며 잘난 척 했던 지난날들의 그 모든 것들은 한낱 허상에 불과했음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 들은 대개가 몇 달을 가지 못했으며, 갈수록 왜소해 지다가 심지어는 거꾸로 나를 불행하게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좋아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3~4년의 세월을 자꾸 강조하는 이유도 이것도 혹시 지나온 과거에 몇 번 체험해 봤던 그런 세계가 아닐까 하는 우려 함 때문에 그동안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생각을 보류해 오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대단한 것이 길래 하고 또 다른 환상에 빠질 수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지켜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누구 나와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됐고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온전히 믿게 되기까지는 지금 현재 2003년 4월 기준으로 약7~8년 됩니다. 물론 초창기에 어렵 풋 이 알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 한 겁니다. 왜 궂 이 이렇게 까지 기간을 자세히 밝히는 가는 차츰 이해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믿지 못하면서 또는 하나님이 계셔도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라고 뻗대고 못 믿다가 어느 날 사람은 다 다를 수도 있고 사실은 모두가 달라야 하지만, 사람들의 몸과 온 우주를 집으로 하여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로구나. 하고 그냥 믿어지게 됐을 뿐입니다.

그렇게 믿어지고 나니까 정말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신 말씀도 당연히 믿어진 겁니다. 그리하여 누구나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행복의 실체에 대하여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제 생각들을 지금 이렇게 정리해 나가고 있는 것이며, 저는 사실 지금 늘 평안하고 행복한 편입니다.

제 환경이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을까요? 천만에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말입니다.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물질적 인 것이나 건강 같은 것들이 훨씬 열악해 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로 인하여 믿음이나 평안함 혹은 행복한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생각조차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갈수록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따뜻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은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도 상처가 깊어서 아물지 않고 있어서 아파하면서도 진실의 마음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알량한 자존심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이웃들에겐 아직까지도 좀처럼 저의 “참사랑” 이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제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과거처럼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없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저절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믿어 질 때에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냥 그대로 내가 격은 진실로 행복한 일들을 이웃들과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어느날 부처귀신에 붙들려 있던 한 가련한 중생이 하나님을 알고나서 회개하고 개종하고부터 복받아서 행복하게 잘살게 됐다. 옛날에 불자일때는 비참했는데 회개하고 새로운 천국을 만나니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 뭐 이런걸 쓰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나의 신앙세계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런건 초월한 겁니다.

그러나 지나온 일들을 쓰다보니 본의 아니게 특정인을 핍박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그것이 늘 염려가 되는 겁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참사랑”이 빠진 인간적인 감정으로 사람이 사람을 폄하 한다던가 핍박하거나 혹은 함부로 평가하고 멸시 하는행위 들은 ”진정한 참사랑“이 아니란 것을 뼛속깊이 깨달았고 제가 어느날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셨군요.“  하고나서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글을 연재하는 동안에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가 제 글을 읽었는지 저한테 그러더군요.  글 읽는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쓰라고요. 그래야 정필(正筆)이 된다고 좋은 조언을 해 줘서 참으로 고마운데.  오늘은 어떻게 다른 날 보다도 더욱 옆으로 벗어 난 것 같습니다. 이제 많이 이해하여 주셨을 것으로 믿고 다음 이야기 진행 할 겁니다만, 그러나 이제부터야 말로 진실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목사님들 핍박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우려해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 하였습니다.

오늘은 여기 까지 이야기 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시고 행복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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