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책소개] 관계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빚기2

첨부 1



저자 : 더글러스 웹스터 (윤종석 옮김)
출판사 : 성서유니온선교회
읽은 날 : 2003년 1월 어느날...

<내용요약(Summary) 5장/13장>
1장 ~ 4장까지의 요약은 4134번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5. 우정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 15:15)

하나님은 우리와 당신의 교제 수준이 대인관계에 그대로 비취도록 우리를 지으셨다.
지속적 우정이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의 당연한 결과다.
영혼빚기는 진정한 영성이란 진정한 우정으로 나타난다는 원리를 고수한다.
영혼빚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맺은 우정과 인간 상호간의 신의는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하나님 중심의 거룩한 실체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보통 사람은 없다. 우리와 대화하는 이들 중에는 한낱 죽어 없어질 사람은 하나도 없다." -C.S. 루이스-

편익 차원의 우정은 유용하고, 길동무 차원의 우정은 힘을 주지만, 영혼을 키워주는 우정은 비할 데 없이 소중하다.

5-1. 어찌 좋은 친군지
우리 영혼이 갈망하는 것이며, 우리가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실용성이나 즐거움의 가치를 뛰어넘는 우정이다.

영혼빚기에서 말하는 우정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나누시는 교제에 기초한 우정이다.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우리를 친구 삼아주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우리의 우정에 관한 모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지속적으로 맺는 관계에서 흘러나온다.
이 사실을 마치 현실적인 인간관계와는 동떨어진 종교적인 진리라도 된다는 듯이 간과하거나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쉽게 실속있는 우정을 가꾸는 7단계를 외우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정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빚으시는 그리스도의 지혜다.

5-2. "내 안에 거하라"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삶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당연히 감사함으로 잘 가꾸고 발전시키고 인정해야 할, 하나님과 우리의 변치 않는 우정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친구가 없다고 탄식하는 대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신, 우리의 친구이신 하나님과 시작해야 한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삼상 20:42)
이들의 영원한 우정의 중심에는 그 관계를 인정하시고 증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은 곧 진실과 희생을 맹세했다는 뜻이다.
둘이 나눈 말은 언제나 믿을 수 있었으며, 둘은 상대방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거나 하나님 중심인 자기 정체성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신자와 맺은 우정 때문에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되며(약4:4), 불신자에게 우리의 신앙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이 경우 친구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우정에는 본질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우정을 통해 자신을 알 수는 있지만 이런 친구는 영혼의 친구가 되지는 못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 27:17)

요나단 같은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요나단 같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서로 사랑하라는 도전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1,19)

5-3. 진정한 친구
누구의 친구가 되든 의식적으로 우리는 요나단의 태도를 자기 태도로 삼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삼상 20:24)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것을 모든 관계에서 증거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분의 사랑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

기독교의 봉사라는 높은 소명은, 섬기는 자가 자기를 낮추는 수고를 해서 섬김을 받는 자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틀린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봉사에 대해 부풀린 개념과 왜곡된 관행을 둘 다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다.
기독교의 봉사에는 노예의 굴욕도 필요없고, 친밀한 우정도 필요없다.
종이 친구로 발전하는 것은 얼마든지 긍정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관계가 일방적인 섬김에서 상호의존으로 바뀌어야 한다.

관계를 먼저 시작한 동기가 나의 특정한 필요에 있다면 나는 친구가 아니라 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친구가 될 사람에게 예기치 않은 부담을 줄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소위 우정이라는 관계에 들어설 때가 너무 많다.
도움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도 인정하지 않기에 그 관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섬겨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고, 그런 요청을 받은 사람은 준비하여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우정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싹튼다.
우정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정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정이라는 관계에서 주고 받기도 테니스 같은 것이다.
양쪽이 비슷해야 한다.
우정이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모든 감정과 배려가 한쪽으로만 간다면 그런 우정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우정은 서로 존중하는 마음과 공유하는 관심사와 공통 목적에서 태어난다.
우정이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이며, 서로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부담없고 편안한 것이다.

"특징상 우리는 피차 중대발표를 하지도 않으며, 상대에게 도전을 주고자 책을 뒤적거리지도 않는다. 그저 예수님의 친구들로서 마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눌 뿐이다." -유진 피터슨-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4)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모든 진정한 우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혼빚기의 지혜는 관계 자체를 위해 진실과 의를 희생하는 이 세상 우정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부도덕한 타협과 진실의 침해는 결국 성품은 물론 우정까지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참된 친구는 친구에게 자기를 위해 거짓말을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일은 진정한 우정의 기초를 깨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는 최선의 길은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친구와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말보다 진정한 우정을 잘 표현한 말은 없다.

5-4. 진행자(MC)
"우정이란 상대를 찾아내는 우리의 분별과 안목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우정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다른 모든 사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시는 도구다." -C.S. 루이스-

영혼을 세워주는 우정에는 고유의 분명한 특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우정은 정체성이 확고하면서도 언제나 열려 있다.
이 정도면 됐다는 식의 할당인원이나 가상의 제한이 없다.
식탁에는 한 사람이 더 앉을 자리가 비어 있다.
새 친구가 깊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여지와 약속이 언제나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