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성도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

첨부 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근본은 다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요1:12)이지만 믿지 않는 자는 마귀의 자녀(요8:44)라고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은 삶의 방법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자가 세상에서 부와 명예,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조차도 같은 것을 따라 산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 남을 것입니다.(마7:24-27) 불신자와 같이 넉넉하고, 남들에게 인정되며, 즐길 수 있는 여유 때문에 마음이 평안하여 풍성한 삶을 누린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신자라면 그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세상에 눈과 귀를 비롯해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실체가 아닌 허상(虛像)입니다.(히11:1)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깨닫게 해주신 실체가 따로 있습니다.(요16:13)

   꿈을 아무리 멋지게 꾸어도 깨고 나면 그 허망함이 쓴웃음을 짓는 것처럼 육신의 생이 다할 때 주님의 말씀이 진리로 증명되고 '세상의 허무'를 보게 될 때도 과연 쓴웃음만으로도 넘길 수 있을 까요?

   누가 좁은 월세 방을 살다가 50평이 넘는 큰 아파트를 장만하여 두어 달 후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월세 방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부숴진 곳을 고치며 도배를 하겠습니까? 혹, 누가 잘못해서 방을 훼손했을지라도 '괜찮다'고 하면서 너그러움을 보일 것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새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이사 가기 전까지 생활이 과연 고생이겠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좁은 월세 방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허상이고, 그의 실체는 바로 50 평이 넘는 큰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한 문서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잠깐의 불편함은 큰집에 대한 소망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소망은 현재의 좁은 방을 여유롭게 기다리며 살도록 해줍니다.

  하물며 '새 하늘과 새 땅'(계21:1)의 주인(마5:5)으로 들어갈 믿음의 사람이겠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