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우리교회 이야기

첨부 1


          
                                        생명 샘 교회 이야기


어쩌면 저렇게 평온한 얼굴을 할 수 있을까?  
2002년9월20일 입관 예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은 그리도 희고 고요 할 수가.....계단에서 굴렀기에 온 얼굴이 멍투성이 었는데 그 멍 자국은 온데간데없이 백옥처럼 하얀 얼굴이 우릴 얼마나 놀라게 했던가?  살아생전 처다 보지 않던 유가족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침묵만 할뿐.... 그랬다 무당 할머니..억세기가 그지없고 누구고 가릴 것 없이 욕 퍼붓기 일쑤였는데 점치던 그 입에서 찬송이 나오고 아멘이 흘러나오고 우리 아들들 예수 믿게 해달라고 웃으며 소원을 말씀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할머니는 고달픈 이 세상의 삶을 조용히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영원한 쉼을 누리기 위해 주님 품으로 가셨다....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뿌려진 씨앗들....그 유가족들이 할머니 살아생전 그렇게도 경멸하고 외면했지만 고요히 잠든 할머니의 평온한 모습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두 아들 내외가 예수 믿고 열심히 교회 다니고 있다.
이 일이 얼마 전의 일 같은데 벌써 3년이 흘렀다. 우리 교회가 공동체 사역을 하게해준 사건이었다...  1997년 무더위가 조금은 꺽인 듯한  8월 중순 광명 2동에 생명 샘 교회를 개척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들어설 즈음 할머니 스스로 귀신을 떼어버릴 려면 예수 믿어야 한다고 80의 고령에 4층 교회를 열심히 오르락 하시던 어느 날 보이지 않아 집으로 찾아가니 가족들이 다리가 부러진 할머니를 그대로 방치해 방안에 가둬 놓음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가 일어서지도 못한 채 겨우 밥 몇 술 얻어먹고 계신걸 알고 목사님과 성도들이 나서  부러진 다리 수술시켜 교회로 모시고 왔으나 방이 없어 교회의자 두개 붙여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 교회 올라왔다가 기겁을 하고 도망가곤 하는 일들이 번번히 일어난 이유는 할머니 대 소변을 교회의자위에서 다 받아내야 했으니 교회 안이 어찌 했겠는가....할머니나 수발하는 목사님내외분이 불평 한마디 없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리라...그저 고마워하시는 할머니... 80십의 고령에 치매까지 계셔서 여간 고초가 아니었건만....지나고 보니 참 감사하고 좀더 잘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을 뿐....겨울이라 걱정을 했건만 할머니 주무시고 일어나기면 항상 하는 말 등이 뜨거워 땀난다고... 처음엔 치매가 계서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러나 보다 했건만 날마다 아침이면 같은 소리.... 그때서야 성령께서 할머니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다.......

다리가 많이 호전되어 혼자 걷게 될 쯤 할머니 날마다 놀이터에 가셔서 교회자랑 목사님 자랑 그 말들이 꼬리를 물고 물어 온 동네 소문이 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장애인 도움이 필요한자들을 데리고들 오기 시작했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숙소가 없어 운영하던 선교원을 밤에만 숙소로 쓰기 시작 하며 우리 교회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에 따른 부식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고..그 일을 위해 기도하던 중 가락 동 시장 노천선교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 목사님을 통해 팔다 남은 야채 버려진 야채를 주워다 부식을 마련했다 가락 동 시장엘 한번가려면 왕복3-4시간을 잡아야 한다 보통 저녁 7-8시 사이에 가서 밤12시에나 싣고 오면 그걸 밤새 다듬어야 했고 다듬어진 야채는 공동체 식구들의 부식과 주위에 계시는 노인 분들에게 주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그때 키우고 있던 자매 둘을(현 중3.고1) 데리고 셋이서 밤새 꼬박 일을 해야 했고 어떤 날은 먹는 것 보다 버리는 쓰레기가 더 많았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온 교회와 선교원안은 야채 냄새로 가득.....
그러고 다음날은 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했다...... 갈수록 식구덜이 불어남에 따라 두 가지 일을 도저히 겸 할 수 없어 2002년에 들어서면서 선교원을 완전히 정리하고 공동체 사역에만 전념 하게 되었다... 세 들어 있던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건물주가 나가라는것이었다

사실 4층이긴 했지만 싸게 있던 터라 막상 옮길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보증금 1천7백에 월 25만원이었으니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얻으며 시설비는 무엇으로 충당하겠는가....

고민 하며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할 거처를 마련이라도 하셨던 것처럼 함께 협동 하시는 목사님의 가정에 물질을 부어 주셔서 교회에 삼천만원의 건축헌금을 드리게 하심으로 시작되어 성도들의 피와 땀이 담긴 헌금들이 조금씩 모아지기 시작했다.....목사님도한 자녀들의 교육보험까지 해지 해 가며 모든 걸 오직 성전 이전 하는데 쏟아 부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교회차가 교통사고를 당했었는데 그 차에 타고 있던 목사님과 성도들이  받은 보상금까지도 교회에 모두 바치게 역사 하셨다.......그렇게 기적적으로 7천만원이라는 돈이 모아졌고 드디어 광명 7동에 67평의 상가 건물을 1억 3천만원에 매입하게 되었다.....시설비가 없어 몸이 불편한 성도들이 밤잠 안자며 일을 가지 않고 교회수리에 나섰고 그렇게 한달을 수리한끝에 드디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전 예배드리던 날 온 성도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부자들의 큰 돈보다 더 귀한 작은 물질이지만 자신들의 전부를 다 주님께 바쳐서 일으킨 주님의 교회였기에 그 기쁨은 남달랐다...

교회를 이전하고 3개월이 지나갈 무렵 선교원으로 쓰던 곳을 아예 공동체 숙소로 쓰기 시작 하면서 건물 주인의 요구가 심해져 가던차에 터무니없이 월세를 올렸고 급기야 비우라는 억지를 쓰며 맘대로 건물을 부동산에 내 놓았다...한달 월세를70만원씩 주고 있기가 버거웠지만 선교원 운영으로 충당이 되었기에 힘겹게 버티어 오던 차에 이런 일이 벌어지자 난감했다. 이 많은 식구 덜 데리고 갈 곳도 또 건물주 들이 아예 집을 줄려고 하지 않아 힘들었다... 그때 목사님께서 아예 이 기회에 집을 사자고 하셨다.. 그랬다 어차피 월세를 주고 건물을 얻어서 갈 바에 그 돈을 은행에 준다고 생각하고 집을 매입 하면 일단 나가라는 서러움은 면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집을 아무리 알아보고 다녀도 우리가 감당할 금액의 집은 나오지 않고 이사날짜는 다가오고 심지어 비닐하우스라도 있으면 들어 갈 려고 알아보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아 짐 들고 어디 창고라도 얻어서 들어 갈 려고 할때 쯤 교회서 10분 거리인 7동에서 제일 꼭대기언덕에 2층집이 한 채 나오게 되어 매입을 결심하고 거의 결정을 하고 갔는데 막상 함께 간 협동 목사님과 상도들이 너무 높다고 반대 하고 오히려 그 보다 평수가 적게 빠진 십여 미터 밑에 위치한 집을 매입하길 원했다....

나나 목사님 생각엔 첨 본집이 더 맘에 들었고 평수도 넓어 우리 공동체 식구덜 살기 좋을 것 같고 1층은 전세가 있어서 돈의 부담도 없고 또 앞이 트여 공터가 있어 주차하기 좋을 것 같아서 사고 싶었는데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니 할 수없이 밑에 집을 계약했다....

우리가 매입 하게 된 집이 얼마 전에 건축업자등이 평당 3백30십 민원을 줄 테니 팔라고 한걸 마다하고선 우리에게 280만원에 팔았다..... 매매과정에서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팔고 나니 너무 싸게 팔았다는 생각에 계약 취소 해 달라고 전화가 수차례 오고갔다...

그러고 있을 무렵 처음 계약  할려고 했던 집 앞에 있던 공터 에 빌라를 짖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다..그때서야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던지.... 현재 그 집은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다부동산의 애기로는  집을 헐값에 내어놓았는데도 누구 하나 살려고 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집앞에 빌라가 다 지어져 그집 거실을 완전히 가려 버렸고 건물과 건물사이가 1미터 돨까말까하다...... 어렵게 집을 매입해서 또 한번의 성도들의 수고의 손길이 오고갔다.....  예쁘게 단장한 우리들만이 쉼터가 생겼고 이제는 주인의 눈치 볼 일 없고 맘 편하게 잠을 청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보증금 2천만원으로 1억3천짜리 집을 매입 하게 되기까지 고초는 이루 말 할f 수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고 사랑이었음을....
영세민 전세융자금 으로 5천만원 집을 담보로 은행융자6천만원 보증금2천만원 이렇게 1억 3천만원이 채워지기 까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지킴의 손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물질의 어려움이야 여전 하지만 우리 공동체 식구덜이 이사 갈 걱정 없이 편히 생활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 할뿐이다.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교회가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호흡함으로 복음을 전 할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이제와 돌이켜 보면 주님의 간섭하심이 항상 계셨고 예비하심이 계셨음을 알았다.

앞으로도 생명 샘 교회는 더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 복음 들고 어디든 달려 갈 것이다. 누군가 그런다 <목사님 물 좀(성도들) 갈아요. 언제 까지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 데리고 목회 할거요, 교회 성장 언제 시켜요?> 라고 묻는다. 그럴 때면 주저 없이 목사님께서는 <언제까지는 언제요? 주님오실 때 까지요.> 하고는 웃음으로 그분들의 물음에 답 하신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