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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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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
이른 아침, 소리 없는 고향의 봄빛이 내 가슴에 와락 안깁니다.
그 따스함으로 이제 곧 아지랑이 아롱아롱 피어오르겠지요. 아버진 지금쯤 길 아래 묵정 밭에 두엄 짐을 몇 번 나르시고는 외양간이 딸린 사랑채 아궁이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시겠지요. 마당가 귀퉁이 창고로 지은 슬레이트 지붕아래 그물망을 씌워 만든 닭장에선 기가 센 토종닭 몇 마리, 홰를 치고요. 그 중에 한 녀석이 먼저 알을 낳았다고 요란스럽게, "꼬꼬댁, 꼬꼬댁..." 울어쌌는 어미 닭 울음이 여간 정겹게 들려오지 않습니다.

아버지, 올해도 어김없이 버거운 농사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넷 중 하나라도 아버지 곁에서 농사를 지으며 심은 대로 거두는 지순한 농부의 길을 갔으면 하는, 그 간곡한 소원을 품고 계셨건만 아들은 마치 제 혼자 크기라도 한 것인 양 쏜살같이 대처로 나가고 고작해야 일년에 두 세 번,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날에 찾아오는 것뿐이니, 애당초 자식의 도리는 도리가 아니지 싶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내 눈에 선히 떠오릅니다.
희어진 머리칼, 이마의 깊은 주름살, 연약한 두 어깨, 점점 굽어지시는 가는 허리, 마디 굵은 두 손과 나무 껍질처럼 굳은 살 배긴 발바닥... 술에 몹시 취하신 어느 날, 밤이 이슥하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맏이는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며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말하시며 점점이 눈물지으시던 칠순 내 아버지의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 살을 훌쩍 뛰어 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스물 다섯에 늦장가 들어 만 오 년이 지난 서른에서야 맏이인 나를 낳았으니 아버지는 되우 기쁘셨겠지요.

지난 겨울, 설날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아버지의 예의 지고한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십리 밖 외가에는 구순의 외할머니가 살아 계시고 아버진 설날이니 마땅히 세배 드려야 한다시며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외할머니댁에 가셨습니다. 3대가 드리는 세배, 아버진 여직 어른을 섬기시는 모본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내 어릴 적 가슴에는 때때로 몰려드는 원망과 불평이 가득차서 볼멘 소리로 아버지께 되지 못한 투정을 부렸습니다. 30여 년 전 우리 나라 농촌 살림은 뻔한 것이고 보면 어린 자식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움은 오죽했겠습니까.

"아버지, 왜 우리 집은 밤낮으로 일해도 쌀밥을 못 먹어요?"
나는 그날 아버지께 말대꾸를 하고 나서, 어둔 밤 맨발로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다박솔 우거진 뒷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만 간간히 밤의 적막을 깨뜨리는데 집 앞 빈개울에 엎드린 나는 무에그리 서럽다고 연신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저멀리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 차츰 다가왔습니다. 손수 남포등을 들고 집을 나간 아들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눈에도 분명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철없는 아들은 등불을 피해 자꾸 빈개울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등불은 사라지고, 어둠에 질린 아들은 시나브로 발걸음을 집으로 옮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사랑채 굴뚝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살그머니 다가와서 어깨를 토닥이며 감싸줍니다. 아, 거기 아버지가 별빛만큼 따뜻한 눈빛으로 서 계셨습니다.

"네 맘 다 알고 있다. 어서 들어가서 자거라."

아버진 입때껏 소를 키우십니다. 어미 소와 함께 하는 아버지의 일생! 어미 소가 되기까지 코를 뚫어 고삐를 쥐고 쟁기질이며 써레질, 온갖 동네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아버지는 비탈길에 구루마를 끌고 가듯 우리 집의 가난한 살림을 이끄셨습니다. 황 송아지가 비쌀 때는 황 송아지를 낳고 암 송아지가 비쌀 때는 암 송아지를 낳아준다며 어미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아버지, 어느 정도 자란 송아지를 우시장에 내다 파는 날이면 아버진 맏이인 나를 꼭 데리고 갔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게 참 싫었습니다. 송아지가 어미 소와 생이별하는 그 눈물겨운 현장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 소는 여물을 주어도 먹지 않고 일주일도 넘게 제 새끼를 부르며 울어쌌는 그 울음소리에 덩달아 내 눈물도 쏟아지던 그 기억 말입니다.

아버진 원체 술을 좋아하십니다. 어쩌면 술에 취해 벅찬 노동의 고통을 이기고 싶은 아버지의 속마음인지도 모릅니다. 뒷마을로 넘어가는 언덕빼기 주막에 머물기라도 하면 해가 져도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를 염려하다 못해 어머니는 맏이인 나를 불렀고, 아버지를 뫼시러 그 남포등을 들고 고샅길을 오를 때면 아버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이제 술 그만 드시고 집에 가셔야지요?"
"오냐. 알았다." 그리 대답하시고도 꿈쩍 안 하는 아버지께 어떤 날은 꾀를 내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 꾀는 어머니께서 일러주신 것입니다.
"아버지, 소 뇌였어요(도망갔어요)!"
아버진 아들의 그 숨 넘어가는 거짓말에 단박 일어서고 말았으니...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 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욱 애틋한 게 있습니다. 내 평생에 뜨겁게 간직하고 싶은 한 순간, 아버지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십 이 년 전 팔순이 넘게 장수하신 할머니의 꽃상여가 나가던 날, 상여를 부여잡고 끄억끄억 목놓아 우시던 예순 아버지의 그 눈물이 내 가슴에도 자주 솟구치도록 나는 기도하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할수록 내 그리움이, 내 부끄러움이 큽니다. 어느덧 불혹을 꿈꾸는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아들일 수 밖에요. 그리하여 아버지의 연세만큼 내가 더욱 성숙했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싶으니 부디 오래오래 사십시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1997년 봄, 아버지의 칠순 생신에... 서울에서 맏이 올림

* 벌써 오래된 편지입니다. 좀 다듬고도 싶었지만 그냥 이대로 올립니다.

* 다음 사이트로 오시면 다른 컬럼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독자(독자가입)로 초대합니다.
http://column.daum.net/daman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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