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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신앙이야기[제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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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이야기 시작 합니다. 이야기하기 전에 여기서 또 한번 양해를 구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가슴 아팠던 일들인데, 이처럼 비아냥거리듯이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말입니다. 나중에 제가 철이 들고 나서야 그래 그때 목사님들께서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었구나.

하고 깨닫고 나서 너무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목사란 당장 굶어죽어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당시 그대로의 느낌대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제가 진실의 “참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본격적으로 제가 2~3년의 과정을 걸친 후 3~4년 전에 철들기 시작하는 내용이 될 겁니다만, 철들고 나서 느낀 것은 진심으로 S목사님, C목사님, 그리고 지금 모시고 있는 목사님 또 그 이외에 너무도 많은 분들이 진실로 대단히 훌륭한 분들임이 틀림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방적인 내 생각으로 평가하고 헤아리고 판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그분들 내면의 아픔에 대하여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고 많이 깨닫게 되었음도 먼저 말씀드립니다.  또한 그것을 잘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부족한 능력으로 인하여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먼저 진심으로 여기에다가 공개적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굳이 변명 한다면, 목사님들의 사명이 바로 우리들이 내면에 안고 있는 아픈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병원에 찾아간 환자들이 의사는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처럼 목사님들에 대하여 그렇게 헤아리지 못했었노라고 변명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었을지 지금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그 한 가지 “진실한 참사랑.” 만은 제가 모시던 목사님들에게서 빠지고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비록 저의 작은 능력의 범위 안에서 이긴 하지만 제가 모시고 있는 목사님들뿐만 아니라 너무도 많은 목사님들이 또한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제가 감히 소중한 무엇이 빠졌다고 확신하고 있는 그분들이 저보다 못한 분들이다. 라고는 “절대로”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진실로진실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철들고 나서 가장먼저 깨달은 것이 바로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  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제가 목사님들을 폄하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결코 비아냥거림이 아니며, 앞으로 철든 이후의 제 행적들을 통하여 평가받고 싶고, 지금은 저에 대하여 그 어떤 편견도 가지지 말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진실로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함부로 말한 책임은 제 능력의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 보도록 노력 할 것 입니다. 또한 제가 연재하고 있는 내용들이 사실에 없는 것들을 함부로 나열하여 그러지 않아도 힘들고 아파하는 분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기 위함은 결단코 아님을 또한 말씀드립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흘렀는데요. 제가 철들고 나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이웃들의 아픈 상처들에 대하여 평가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참사랑”이 빠진 상태로 그렇게 하다가는 정말로 아픈 상처에다가 오물을 바르는 일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치없지만, 또다시 부탁드리오니,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진실로 “참사랑”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럼 어제의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 하겠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해에 아마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계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주일예배가 끝난 후에 목사님께서 이런 안내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다음주 주일부터는 낮 예배가 끝나고 나서 14시부터 ~ 17~18시 경까지 차 집사(차 원장)님께서 인근의 불우이웃들을 위해서 무료진료를 하시기로 했답니다.

그러니 교우님들도 될 수 있으면 차 집사님을 보조하여 하시는 일이 잘 될 수 있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교회 앞에 현수막을 걸어 놓고 안내 전단지도 제작하여 배포하기로 했으니, 그렇게들 아시고 각자 책임지고 자기에게 할당된 전단지를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예배 후 점심시간에는 모처럼 활기가 넘치는 듯 했습니다. 모두들 차 원장 에게 찾아와서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하셨다고, 훌륭하신 분이라고 칭찬들이 자자했습니다. 저 역시 한 말씀 거들었죠. “목사님께서 말씀 하신 것이 사실 입니까? 차 집사님이 먼저 이런 큰일을 하기로 계획했다는 말씀 말입니다.”

하여튼 그렇게 믿음이 없던 저니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랬더니 “아 그럼요.” 라고 속 시원한 대답은 안 하시더군요. 그냥 썩은 미소를 잠깐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차 원장은 일요일 마다 자신의 병원에서 간단한 의료 기구들을 챙겨 가지고 와서 예배 후 교회 안에다가 임시 병원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습니다. “매주 일요일 N병원 원장 불우이웃 돕기 무료진료 개시.. 시간: 오후 2시~ 6시 까지. 기간:00년 0월 일요일부터 00년 0월 마지막 일요일 까지, 주최:MY교회,” 정확한 것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대략 이런 내용 이었을 겁니다.

그런 후에 교인들은 현수막에 나와 있는 내용과 비슷한 안내문을 일정량씩 할당받아서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드리면서 이 기회에 교회 오셔서 무료진료 받으시도록 홍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도 나오시도록 전도 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부끄럽지만, 저는 그냥 무료진료만 몇 번 받았고, 전도하는 일은 못했습니다. 이제 다들 아시겠지만, 제 발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8년이나 됐는데, 아직까지 성도의 신분인 것 만 보더라도 얼마나 엉터리 교인인지 짐작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교회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제가 교회에 출석해서 보니 개척교회에는 대체적으로 성인성도의 대부분이 집사님들이더군요. 큰 교회에서 정식으로 안수 받고 신앙생활 하시다가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서리집사로 임명된 분들이더군요.

가끔은 권사님이나 장로님도 계시던데 사정은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목사님께서 하시는 목회일 에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하고 간섭하는 일은 결코 없었으나, 세례를 받으라고 하는 것만은 완곡하게 사양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악취미였지요. 하하하.....

철들고 나서도 지금 모시고 있는 목사님께서 몇 번 주문 하셨지만, 처음에는 완곡하게 사양하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30여년전에 친구들과 어울려 교회에 잠깐 다닐 때 여럿이서 목사님 앞에 서서 물 뿌림을 받은 것 같다고 말입니다.

아마도 이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중간쯤 이미 언급됐을 것으로 기억 됩니다.그랬더니 목사님께서 그러셨습니다.  그러면 이미 세례는  받으신 것 같다고 말입니다.  하여튼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매주 일요일이면, 주일 낮 예배 후에 교회는 임시 병원이 되고 저도 가끔 보조한답시고, 차 원장 옆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영 손님이 안 오시더군요. 그냥 무료라는데도 말입니다. 동네가 그렇게 달동네는 아니라서 처음부터 손님들이“왕창”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다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오시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는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기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처음에 목사님께서 안내한 행사의 계획은 이랬던 것 같습니다. “차 집사님이 행사기간은 우선 3~4개월 정도로 하신 답니다., 그러나 손님이 많으면 더 연장 하신다고 하시니 여러분들은 적극적으로 홍보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송이엄마와 제 아내 그리고 박 집사님 신 집사 내외와 현 전도사님 내외분 등이 나서서 아주 열심히 홍보를 하러 다녔다고 기억됩니다. 저는 주로 차 원장 보조를 해야 된다는 핑계로 교회에 남아서는 손님이 없으니까 차 원장 심심할까 싶어 가끔 혈압도 재어 보고 그랬습니다.. 하하하..

그러면서 그때 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병원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도 그때 많이 했는데, 병원 이란 게 주로 아픈 환자들이 찾아 가는 곳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사람이 건강 할 때에는 너그럽다가도 아프게 되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신경질 나고 화가 나고 그러지 않습니까?

물론 “참사랑” 이 뭔지를 아는 분 들은 그렇지 않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더군요. 해서 순전히 그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과만 왼 종일 씨름 하노라면, 정말 힘들겠더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요일까지 할애하여 그렇게 무료진료를 하고 있는 차 원장을 보고 있으면 참 대단하기도 하고 의사란 직업이 진실로 사랑이 없으면 너무도 힘들고 고달프겠다는 생각을 그때 참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따라서 그때 제 좁은 생각 에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으니까 오히려 잘됐다.”하는 무지하게 신심이 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 이하 전 교인들은 너무도 실망이 커서 많이 힘들어들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료진료 받으러 오셨던 분이 3~4개월 동안에 교인들과 연관이 있으셨던 노인 분들 몇몇 분과 M교회 교인과는 전혀 연관이 없던 일반인으로는 서너 명의 할머니가 전부였다고 기억됩니다.

감사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여기까지 입니다..
“늘 그렇듯이 평안하시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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