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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신앙이야기[제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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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야기 시작합니다.

          
차원장의 무료진료는 그렇게 해서 애쓴 보람도 없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보고자 했던 야심 찬 계획이었는데,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던 가 봅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교회안의 분위기는 오히려 냉랭하게 찬바람이 일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즈음 갈수록 송이엄마의 찬송가 소리도 힘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성가대의 화음도 잘 맞지를 않아서 가끔씩 뭔지 모르게 성가대원 간에 어색해 하고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 낮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막 출석하던 때의 일입니다.

C목사님의 아들, 딸과 송이엄마 간에 심한 언쟁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됐는데, 처음에 C목사님의 아들이 그러더군요, 송이엄마에게 - “교회에 그렇게 늦게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나와서 언제 연습하고 시작 하려고 그래요.” 그러면서 송이엄마에게 눈을 부라리더군요.

늘 차 원장이나 송이엄마 에게 고분고분하고 착하게 굴던 그들이라서 저 으기 당황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송이엄마가 그랬습니다. “아니 얘들이 어쩌다 한번 늦을 수도 있지 어디다가 눈을 부라리고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언짢아했는데요, 그때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송이 엄마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목사님의 아들과 딸이 합세해서 공격적인 발언들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 내용이 참 걸작입니다.  갑자기 그러더군요, “에이 씨~ 돈만 많으면 다야.. 돈 좀 많다고 그러지 말아요. 지금 우리가 돈 없다고 그렇게 무시하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언제 까지 그렇게 잘 사나 두고 볼 겁니다.”

이런 상황은 매우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써 싸움을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송이엄마가 평소보다 좀 늦게 와서 찬송가 연습을 못했기 때문에 지휘하던 목사님 아들, 딸이 어린 마음에 좀 화가 났다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두 마디 하다 말 걸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실 송이엄마가 좀 늦게 오긴 했어도 평소에 비해서 조금 늦게 온 것  뿐이지 그렇게 많이 늦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볍게 넘어갈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송이엄마가 “아니 얘들이 왜들 그래...” 라고 한마디 했을 때 예배 시간 전에 이렇게 연습도 못하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다 던 가 뭐 그랬어야 할 것 같았는데 갑자기 그런 이상한 말들이 튀어 나오니까 송이엄마는 하얗게 질려서는 할 말을 잊었는지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그러고 있더군요,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목사님 이하 여럿이서 어떻게 해 보려 했으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때에 차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니 얘네 들이 지금 뭐라고 그러는 거야. 여 보 이제 그만하고 갑시다.”

그러면서 횡 하니 밖으로 나갔는데, 뒤따라 송이엄마도 따라 나갔습니다. 그때에 참으로 곤혹스러워 하던 차 원장(차 집사)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여튼 차 원장부부가 그렇게 막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때에 단상에서 예배준비를 하던 목사님이 단상 밑으로 내려와서 “아니 지금 왜들 그러는 거야? 어 저저 이 선생..”

그렇게 당황 하시면서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그 표정은 제가 그래도 차 원장과 좀 친하니까 빨리 쫓아가서 붙잡아 오라는 애절함이 배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밖으로 나가는 차 원장을 따라가서 붙잡아야 한다는 강한 느낌이 있었으나, 그만 두고 그냥 자리에 앉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뒤이어서 목사님의 아들과 딸도 밖으로 나가 버렸고,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그날은 성가대 없이 어색한 가운데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 순간에 참 많은 생각들을 한 것 같습니다.

주로 이런 생각들을 한 것 같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역시 내가 옳았어, 즉, 그동안에 이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절대로 저런 것이 아닐 텐데, 이런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라면, 정말 실망이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지 어쩐지는 기억에 없지만, 아마 비슷한 생각은 했을 겁니다.

늘 뭔가 나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저런 것은 성경 말씀과 많이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하여튼 그런 일이 있고나서 차 원장 부부는 인근에 있는 중형 급 교회로 옮겨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는데, 7~8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교회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로 우리와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처음엔 오히려 더욱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그것은 차 원장이 매년 중요한 명절 때 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약간은 고급스런 선물을 보내오고는 했기 때문에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초청하여 외식도 하고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서로 내왕이 뜸해지기 시작 한 것 같은데 그동안 별 생각 없었으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 동안 서로 얼굴을 못 본 것 같군요.. 제가 이글을 연재하느라고 바빠서 그랬을까요? 하하하....  

그 후로는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목사님의 목에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석고보도 같은걸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참으로 통쾌하더군요. (“그것 봐요. 내말이 맞지 않았나요. 뭐가 그렇게 잘나셔서 그렇게 말끝마다 나 좀 섬겨야한다. 너희들은 그래야 복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시더니 결과가 이런 건가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통쾌한 생각들은 서서히 없어지고 있었고, 마음만 점점 무거워 지기 시작 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때부터 C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암에 걸리셔서 투병생활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사실은 평소에도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않던 사모님이셨는데, 늘 엄청 힘들어하시다가 차 원장의 권유로 종합병원에서 진찰받고 나서 그런 판정을 받으신 것 같은데요. 완전히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으로써 희희낙락(嬉嬉諾諾)할 수 있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즈음에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마지막 설교말씀은 참으로 저를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제가 마지막 설교말씀 이라고 했는데요. 그것은 지금 마지막 들었다는 설교말씀을 마지막으로 교회를 그만 다녔다는 뜻이 아니란 것입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교회는 다녔지만, 더 이상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기억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대하여 잠시 뒤로 미루고요. 그때 들었던 설교내용이 대충 이랬습니다. “차 원장이 그렇게 가고 나서 참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떻든 우리 아이들과 그런 불미스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차 원장을 여러번 찾아 갔었다. 그런데 한겨울 이 추위에(당시가 겨울이었음) 집으로 찾아갔다가 문도 열어주지 않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그러실 때 눈물이 어리었음)인간이하의 수모를 여러 번 격었다.

그래도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참을 수가 있었고,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실 것이다. 내가 지금 차 집사를 위해서 오히려 중보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가 우리 아이들은 건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으로써 아이들을 감싸고 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교를 하시는데, 그 말을 듣고 앉아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해 오더군요. 그러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도무지 목사님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알고 저런 설교를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 이렇게 말입니다. 참 건방진 생각을 했죠? 성도 주제에 말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한 것은 전에 배 집사 부부의 경우에는 그렇게 까지 인간 이하의 수모를 격지 않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상황이야 많이 다르지만, 너희들 나를 무시하고 그렇게 마음대로 하다가는 별로 좋지 않을 거야. 라는 간단한 메시지가 고작 이었지 그렇게 성심성의를 다해서 찾아가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너무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배 집사 부부를 붙들어 놓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문도 안 열어주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배 집사와는 다니는 교회가 서로 달라도 우리와는 서로 이웃에 살면서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 하겠습니다. 평안 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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