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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 이상돈의 신앙이야기[제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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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늘 감사를 드립니다. 이야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저는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면 예배 전, 후로 앉았다 일어나는 행사를 뺀 예배시간 내내 그 좁은 의자에 왼발이 밑으로 가고 오른발이 위로 가게 앉아서(쉽게 말해서 책상다리) 길고 긴 생각여행을 시작한 겁니다. 그때가 아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1997년일 겁니다.

그때로부터 정 자세를 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있어도 눈은 반쯤 아래로 뜨고 앉아서 길고긴 생각을 하기 시작 한 겁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께서 처음에는 무척 당황해 하셨는데,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예배시간 내내 졸고 있는 것 같아도 설교말씀을 다 듣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가끔 예배 후 식사 시간에 넌지시 설교 내용에 관하여 말씀 하실 때가 있었는데, 이거 영 송구스러운 말이긴 한데 말입니다.

한 두 마디 목사님 말씀 들어보면 대충 설교내용이 파악 되므로 슬그머니 그런 어구를 집어넣어 “참 좋은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너스레를 몇 번 떨었거든요, 그러나 사실은 전혀 설교말씀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왜 그럴까?” 라는 생각에만 몰두했습니다.

제가 처음 글쓰기 시작할 때 어렸을 때에 어머니께서 제 별명을 “먼 산 바래기” 라고 지어 주시는 바람에 평생을 저는 그렇게 “먼 산 바래기” 로 살아야 하나 봅니다. 하하하... 하여튼 그렇게 긴 생각을 하면서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또다시 봄이 오기 시작하던 1998년 어느날 일입니다.

그렇게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 하더군요, 풀리게 된 계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었거든요. 그래 그때 그렇게 서로가 믿지 못해서 생긴 문제들은 내 이웃들이 내 마음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아니야 그때 내 생각에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 후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그동안 왜 그처럼 오랫동안 별 볼일 없는 제 과거의 행적들에 관하여 그렇게 자랑처럼 상세히 말씀 드렸는가 하는 걸 밝혀야 겠군요. 바로 지금부터 하려는 이런 말들을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동안 제 미니 자서전 같은 삶을 어떻게 지켜보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나름대로 교과서적인 삶을 살아 왔다고 자부할 만큼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볼 때 크게 잘못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사실에 근거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과장을 배제 시키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흔히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곧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일생을 어떤 영웅처럼 묘사하고는 하던데요. 제 목적은 그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사실 관계만 기록한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타락하고 더러운 짓 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어느 정도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그동안 제 글을 통하여 일어난 사건들 대부분이 나는 그렇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상대방들이 잘못해서 발생한 일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제 아내가 제가 그렇게 열심히 설교를 하고 그 설교들에 대하여 비록 제 능력의 한계이긴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해 봐도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겠고, 심지어는 제가 가지고 있던 자존심 까지 버리면서 교회에 함께 출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아내의 잘못된 신앙에 기인한 것이지 내 잘못은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내 생각이 근본에서부터 바뀌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나에게 엄청난 문제가 있었고 잘못이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제 과거에 대하여 그렇게 상세히 기록하려고 애쓴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근본적으로 나쁜 인간으로 보였는가 묻고 싶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식적인 삶을 살아온 제 과거를 밝히지 않고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말을 달랑 하게 되면, “음~ 인생을 더럽게 살던 한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 만나서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부끄럽고 별 볼일 없는 제 과거지만, 분명한 것은 타락한 생을 살아오진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기에 그것만 증명되면 충분했던 겁니다.오늘은 주일인데 이야기를 좀 늦게 시작했더니 교회갈 시간이 촉박하여 여기서 줄일까 합니다. 그래도 섭섭하니 제가 철들기 시작하면서 써 봤던 글 하나를 제 다른 방에서 복사 해다가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 ; 커다란 얼음 덩어리  

꿈나라 전설을 아시나요..

꿈의 나라에 가면...
100년 동안 녹아 내리는 얼음 덩어리들이 있습니다.
꿈의 나라에서는 꿈나라절대자 한테서 누구나 똑같은 이 얼음덩어리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령을 받지요"네 맘대로 하거라" 그리하여 꿈의 나라를 벗어나는 그날까지 혹은 얼음이 모두 녹아 버리는그날까지(얼음이 녹으면 누구나 꿈나라에서 쫓겨남) 이 처치 곤란한 얼음덩어리와 함께 합니다.

꿈나라 백성들은 저절로 녹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별별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얼음덩어리로 얼음조각 작품들을 만들지요.
그리고는.. 서로가 자신의 작품이 최고라고 으시대고는 합니다.
하지만 100년 후에는 녹아 버립니다.

때로는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특이한 인간들도 간혹 있습니다.
그럴땐 주위로 부터 엄청난 질시와 칭송을 받기도하고 다른 사람의 작품만드는데 관여할수도 있는 권한도 자기들끼리 주고 받기도 합니다.
참으로 우습기는 하지만 그렇다는군요.

그리고 그런 전설은 오래도록 회자 됩니다.
하지만 또다른 괜찮은 작품들이 등장 하면서 서서히 잊혀져 갑니다.

꿈의 나라에 들어서는 순간에 그것부터 배움니다.
하지만 꿈속 나라가 대개다 그렇듯이 곧 녹는다는 사실을 망각하지요. 10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가 봅니다.
그리하여 전설들을 기억하고 자신은 더 특별한 존재로 착각 합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얼음덩어리를 뭉개 뜨리기 시작하지요,
무엇때문에 -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
하지만 수많은 꿈속 백성이 그랬듯이 도중에 포기 하던가 아니면 100년의 얼음 덩어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만듭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꿈속나라에 가면 꿈을 깨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얼음조각을 해야 합니다.
비록 조각가의 비애를 멀리하고 싶은 비 전문가라도 어쩔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꿈이기 때문입니다.

얼음덩어리의 주인은 늘 잔잔한 미소로 바라볼 뿐 말이없습니다.
그러나 꿈나라 백성들 사이에서는 항상 이런 유언비어가 난무 하지요.
"얼음 덩어리의 주인께서 이런 작품을 원하고 있으니 이렇게 해야 한다.저렇게 해야 한다" 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하면, 얼음덩어리의 주인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또다른 덩어리를 받을수 있고 아니 영원히 녹지 않는 덩어리를 받을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하기 때문 이지요, 하지만 꿈속나라 얼음덩어리 주인이 원하는 작품은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그 작품은 꿈을 깬 자들만이 알수 있는 일이기에 꿈을 깨어야만 알게 됩니다. 꿈을 깨어야만 꿈속 나라를 벗어나서 밝은 세상을 알수 있으며 얼음덩어리의 주인과도 만날수 있고 녹지 않는 얼음나라에 갈수 있는 길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꿈속나라를 벗어나는 일은 아주 쉬운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  

오늘도 많은 축복 받으시고, 평안 하시옵소서.."하나님의 가호가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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