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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신앙이야기[제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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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어제 항거할 수 없는 그 어떤 힘 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저는 앞으로 “하나님”으로 부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 어떤 대화형식의 글들은 실제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 아니라 제 생각이나 느낌들을 제 수준에 맞춰서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으로써 치졸하거나 옹졸하거나 그럴 수 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순전히 제 수준이 무식하고 미약한 관계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은 실제로 제가 느꼈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또하나 여기서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이상한 힘들을 그때 처음 느끼고 알게 됐느냐 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해서 “아닙니다.”

그 당시에 아니 “생각여행”을 하기 전에도 기본적으로 저는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는데요,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아마도 누군가가 했던 말일 테지만, 그때는 그것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곤 했었음.) 사람들은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갈대를 보면서 그것으로 바람을 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바람을 본 것은 아니다.” 어쩌고 하고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보이지 아니하는 위대한 힘의 근원에 대하여 생각하지 아니하고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어느 날 깨달음을 통하여 그런 것들의 실체에 대하여 알게 되지 않았는가? 고로 나는 뭔가 특별한 사람인 것이 확실하다.” 이런 어설픈 생각들을 그때 혼자서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달았다고 하는 것들도 대개는 이미 열반하신 큰 스님들이 평생수련을 통 하여얻게 된 “오도송” 들을 어디서 주워듣거나 책에서 읽고 나서는 그런 생각들이나 말들을 마치 제가 생각하기나 한 것처럼 제 마음대로 짜깁기 하거나 편집한 걸 가지고서 “이것이 내가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고..

하며 착각하고 살았던 겁니다.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는 깨달음이 아니라 남의 것을 가지고 말입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뒤에 말씀드릴 것이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비슷한 우를 범하고 있더군요. 남들이 다 기록하고, 해석하고 해서 하는 말(설교)들을 아무런 느낌 없이 받아드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공감이 가는 것들은 내가 깨달아 알게 된 것이고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무조건 틀렸다고 폄하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성경말씀들을 좀더 깊이 있게 사랑하고 묵상하여 깨닫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남들이 설명한 그대로를 무조건 그대로 받아 드렸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 설명되어진 성경말씀들이 옳고 그름의 문제들이 절대로 아니란 것을 먼저 밝힙니다.

하여튼 그건 그렇고 저는 그때까지 어떤 수행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힘의 세계에 접근하고 그리고 나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에서는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하고 간구 드려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기만 하면 인간의 한계도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군요.

어라! 이거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사실은 간단히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여행”을 통하여 느끼게 된 그 이상야릇한 그 어떤 힘의 정체에 대하여 그때가 처음이 아니란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절과 인연이 있었고 고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살면서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늘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기본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고모님께서 제게 그렇게 가르쳐 주셨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불심이 있고 그 불심에 호소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들이라도 다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고,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다 보면(기도하면) ”나무관세음 보살“ 께서 도와주실 것이니 그렇게 알거라.”

그리하여 살아오는 동안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모님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고 그러다가 이상한 체험들이 간혹 있었고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신기하게도 이상한 인연이나 도움을 받아서 아주 쉽게 해결되고는 했던 경험들이 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제 생애에 있어서 그 어떤 항거할 수 없는 힘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한번씩 그것을 느끼고 그럴 때 마다 내게 뭔가 특별한 일이 발생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런 나에 대하여 나만이 뭔가 “특별한 인간” 인줄 착각하고 살았던 게지요. 나중에 보니 그런 경우를 기독교에서는 “은혜 받았다” 그러면서 엄청 좋아들 하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이 언제 그런 일 있었냐는 듯이 “불평불만”들을 하지만요.

아무튼 이처럼 그 어떤 항거할 수 없는 큰 힘이 이번에도 역시 나에게 와서 나를 질책하고 타이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뭇 다르다는 걸 처음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의례히 또 그 어떤 힘이 내게 왔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아내의 내면에 있는 상처들이 보여 지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차츰 너무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뭔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시작했습니다.(여기서부터 나오는 대화형식은 순전히 실제 그대로의 상황이 아니라 제 수준에 맞춰서 제가 바꾸어 놓은 것이니 치졸하거나 옹졸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감사하겠음) “성령님이십니까?” 그때 이런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언제부터 저와 함께 계셨습니까?” “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네가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왜 지금까지 전 그걸 몰랐을까요?” “그건 네 못난 자아(自我) 때문이란다.” 이때부터 제 생각 속에서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도 믿지 못하던 그 힘의 존재에 대하여 조금씩 믿어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제 생각 속에서는 그것이 고모님이 가르쳐 주신 불심일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엄연히 구분되어진 불교용어와 기독교용어가 있는데 언제부턴가 제가 기독교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무척고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불심이면 어떻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면 어떤가?  

오늘날 내게 ”진정한 사랑” 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새롭게 깨닫게 해준 말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가르쳐준 말씀이므로 앞으로는 지금처럼 늘 나와 함께 해주고 계시다는 이 힘의 실체를 하나님으로 믿기로 하자..

이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났을 때 그 이후로 이상한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건 다음으로 잠시 미루고요. 생각하느라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었군요. “생각여행”을 하느라고 그동안 1~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 빠르죠. 아무튼 그러는 동안에 제가 출석하던 M교회에 변화가 좀 있었습니다.

먼저 양해를 좀 구합니다. 그것은 변화된 날들의 정확한 날자 들이 기억에 별로 없다는 겁니다. 제가 그만큼 그런 것에 우둔한 체질이라고 이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철들고 난 이후 3년 정도의  행적들에 대한 것은 비교적 정확히 기록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철들고 나서는 그런 것도 좀 챙기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차 원장이 그렇게 황당한 사건을 격은이후에 인근의 중형 급 다른 교회로 출석하고 나서 몇 달 후 에 창고 같던 교회에서 인근 아파트에 붙어 있는 상가건물 3층 한쪽 방을 얻어서 이사를 한 겁니다. 10여 평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요, 그 당시에 그 상가 건물에 점포주인들만 엄청 많고, 장사는 되지를 않아서 대부분이 빈 점포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려니까 이것도 잘 안되는군요. 제가 그런 것들에도 또한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라서 왜 그렇게 됐는지 어떻게 이사를 하게 되었는지 조차 사실은 정확히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어느 날 M교회가 이사 간다고 해서 따라갔고, 그리고 나서 또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옆 점포를 얻어서 벽을 헐고 넓히기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벽을 헐고 옆 점포 와 합쳐 놓으니 꽤 그럴듯한 교회가 되더군요. 그런 와중에서 이것 한 가지는 정확하게 기억에 나는군요. 아내가 제게 그러더군요. 새롭게 교회를 넓히고 나서 바닥에 장판을 깔아야 하는데, 우리가 하고 싶다고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더니 엄청 좋아했던 일이 한번 있었군요.

그리고 그때 그렇게 새 단장 을 부지런히 하고 해서 이제 뭔가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시려나 보다 했는데, 새 단장을 하고나서 또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 C목사님께서 좀더 젊으신 어떤 목사님과 어느 날 함께 오셔서 그 목사님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분은 J목사님으로 C목사님과는 이러이러한 관계에(사실은 이부분이 전혀 기억에 없음. 당시에 워낙 그런 문제에 무관심할 때임) 있고 앞으로 C목사님께서 휴식 년 을 가지려 하는데 그동안 목회를 해 주실 것이니 그렇게 들 알라고 C목사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제 생각은 그냥 C목사님의 사모님께서 병세가 더욱 위중하여 도저히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으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여기서도 자세한 내막을 잘 모릅니다. 오로지 하던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고 제가 하나님의 임재를 믿게 되는 거의 막바지의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러다가 어느 날 보니까 C목사님과 J목사님 간 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어느 날 교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대상 위에서 J목사님께서 뭔가를 설명하시더니(이부분도 그 내용이 전혀 기억에 없음) 그리고 나서 이 돈은 C목사님께 드리기로 했다고 하면서 천만원인가 천오백만원인가를 C목사님께 건네 드렸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박수를 치고 그때부터 담임목사님은 J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에 교회명이 M교회에서 E교회로 바뀌고 말입니다.  

그런데 참! 여기서도 간단히 말씀드릴게 있군요. 그렇게 되기 전에 제 아내가 목사님들이 바뀌고 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리된 사건들을 이러쿵저러쿵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역시도 막바지 생각에 골몰해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무슨 말을 했었나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한 가지 기억은 정확한데 자기도 이제 다른 교회로 옮기고 싶다는 말이었을 겁니다.

목사님도 새롭게 바뀌고 했으니 기회는 이때다 싶었나 봅니다. 그때 저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처음 M교회가 C목사님에게서 J목사님에게로 넘어가기 전에 J목사님이 설교하는 내용을 들어보았을 때 설교 하시는 내용이 앞서 경험한 두 분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따른 그 어떤 방해를 받지 않고 하던 생각을 마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겁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랬습니다. “장모님도 말씀 하셨지만, 새로 오신 목사님 은 능력이 많으신 분인 것 같다. 그러니 그냥 다니던 대로 계속 다니자, 그리고 교회 옮기고 새롭게 단장하면서 공사할 때 투자한 돈도 있는데 아깝지 않은가? 물론 다 교회의 재산이니 권리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니 훨씬 낫지 않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꼬드겼을 겁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참으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그때 제가 한 것 같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J목사님과 J목사님의 사모님께 너무도 큰 상처를 입혀 드리게 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까지만 해도 제 아내의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하여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애써 변명해 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 합니다. 늘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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