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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30 - 운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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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제부턴가 '집은 코딱지만한 해도, 차는 삐까번쩍하게 몰고 다녀야 체면이 서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차량의 숫자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비좁은 주차 공간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차 없는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러고보니 내가 운전면허증을 딴 것이 어느덧 20년이 되었습니다. 그 중 10년은 일명 '장농 면허'로 세월을 보냈고, 나머지 10년은 아내로부터 '카레이서 김'으로 불릴 정도로 열심히 쏴다녔습니다.

   솔직히 나는 운전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휴학하고 군 입대일을 기다리던 어느 날…, 노느니 운전이나 배워놓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선 거액인 5만원을 선납하고 운전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것이 꼭 산적두목같은 학원강사는 처음 1주일간 죽기 살기로 에스 자 코스에서 전진과 후진만 연습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강사는 운전 연습을 하는 내내 고개를 창 밖으로 내민 채 바퀴의 상태를 살피도록 요구했습니다. 목을 길게 빼고 있자면 금세 목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잠시 머리를 차 안으로 들일라치면 강사는 내 머리를 밖으로 밀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연습하고 나면 운전면허고 뭐고 다 팽개치고 싶은 심정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네가 강사면 강사지…내 돈 내고 다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거야? 내 아니꼽고 더러워서라도 빨리 운전면허 따서 네 얼굴 다시는 안 본다!"

   독도 알맞게만 쓰면 약이 된다던가요. 필기시험은 독학으로 이미 합격해 놓은 상태였기에, 운전연습을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난 후, 나는 학원강사의 지시대로 실기시험을 위해 원서를 접수시켰습니다. 당시는 접수일로부터 1주일 정도면 시험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원서를 접수 시킨 후, 1주일 동안은 에스 자를 포함해서 굴절과 티 자, 그리고 주행까지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첫 실기시험에서 보란 듯이 '합격'했습니다. 2주일만의 합격이었습니다.

   학원강사는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다는 내 말을 듣고 밝게 웃으며 "축하하네…그동안 내가 좀 모질게 했제. 근데 대학생들은 좀 모질게 하면 금방 합격하더라구."하면서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 후, 군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하고 3년여의 사회생활, 그리고 신학대학원 진학을 하는 동안 운전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대학원 3학년 때 결혼을 하면서 120만원짜리 중고승용차를 구입했습니다.

   막상 차를 구입했지만, 면허증 딴 지 거의 10년만에 잡아보는 운전대였기에 두려움이 너무도 컸습니다. 그래서 신접살림을 차린 아파트 주차장에 차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낮 시간을 이용해서 운전연습을 했습니다.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에스 자, 티 자, 굴절 코스를 생각하면서 사나흘을 연습한 끝에 도로로 진출했습니다.

   그렇게 운전을 하기 시작한 지 한 달 후, 서울 여의도에서 처남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노라니 쥐구멍에 해라도 뜬 것 같은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너무도 신났습니다. 엑셀레이터를 밟은 오른발에 점점 힘이 가해졌습니다. 디지털 속도계의 숫자는 110, 120, 130, 140, 150, 160…168Km까지 계속 상승했습니다. 그 때 아내가 붙여준 별명이 '카레이서 김'입니다.

   문제는 서울서 광주로 내려오던 길에 생겼습니다. 대전을 지나면서부터 차에서 '따콩따콩 투깡투깡 따따따따' 따발총 소린지 콩 볶는 소린지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나는 '이러다 갑자기 폭발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별 일 아닐거라며 아내를 안심시키면서 계속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장성 터널을 통과한 차가 갑자기 부풀린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멈춰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원인은 타이밍벨트였습니다. 중고차를 구입해서 무리하게 고속주행을 하다보니 약해진 타이밍벨트가 끊어지면서 고속도로 위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만 것입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던 견인차가 있어서 광주의 어느 카센터까지 차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만,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아내와 나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며 웃곤 합니다.

   문득 교회를 섬기는 것 역시 하나의 '운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고속질주를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는 오히려 위험 요소가 많음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현재 고속질주 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다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운전하다보면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수많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목회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하나님의 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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