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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 이상돈의 신앙 이야기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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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입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끝으로 제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준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늘 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온전히 믿어지고 나서 근본적으로 생각이 바뀌기는 했지만, 환경적인 것이나, 제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상식들이나 또는 올바르게 살아보려는 삶들이 그렇게 근본적으로는 크게 잘못 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잘못 된 것이 결코 아니었으므로 아내 에게 대하여 똑같은 언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가장 풀기 어려웠던 딜레마 이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주장하는 성경교리들이 대부분 맞긴 맞는데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 ”생각여행“ 내내 수도 없이 확인 해 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미 수도 없이 아내에게 말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럴 때 마다 불신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비슷한 말을 한다고 믿어 주겠나,” -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저를 믿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믿게 하기 위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아내의 눈높이에 맞춘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다. 그래야 우선 제 말을 신뢰하고 믿어 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D- day를 정하고 있다가 E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났을 때 열심히 참여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아, 드디어 아내가 그렇게 목 메이게 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가 받게 되는 걸로 각본을 짜고 실행에 옮긴 겁니다. 더구나 부흥회 강사로 오신 분 중에는 신체적으로 아주 열악하셨던 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명사가 되신 분도 계셔서 더욱 효과적 이었고 실제로도 그분을 저는 매우 존경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감안했는데 그중에는 E교회 담임목사님을 위해서도 그분의 교인 들 중에 그런 “은혜 받은 자” 하나 나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아울러 했었다고 말씀드립니다. (이부분이 J목사님과 J목사님 사모님께 가장 송구스럽게 생각되는 대목 입니다. 혹시 제 글을 읽으셨다면, 지금쯤은 많은걸 알고  이해 하셨을 걸로 믿고 싶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제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하나님 만난 것 같다.. 이제 드디어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나봐” 여기서 잠깐만요. 말하다보니까 제가 아주 나쁜 사람 같은데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온전히 믿어지는 것이 정말로 “은혜 중에 은혜”를 받은 것 아닌가요?

저는 그렇다고 3년 전부터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고 영원히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마냥 거짓말은 아니고 하나님께도 허락은 받은 겁니다. 아무튼 아내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그런“은혜”의 형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은혜” 에 대하여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특히 아내가 가장 큰 모델로 삼고 있는 아우 이 장로가 있기에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잘못하면 오해 하실 것 같은데, 제 아우는 정말로 본질적으로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대개의 교인들은 아우의 내면에 있는 믿음보다 겉으로 드러난 물질적인 축복들 그런 것에만 더 관심들이 있고, 제 아내 역시 어느 정도는 그랬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제 마음대로 어느 날“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가 됐으나 그러나 당장 어떻게 물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제가 한일은 먼저 바둑 두던 것을 중단 하는 일이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어영부영 살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루에 한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습니다. 사실은 이부분에 대하여는 너무도 신기한데 말입니다. 3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가 전에도 여러 번 금연을 시도해 봤지만, 시도하다가 영 못 끊었던 그 지겨운 담배가 말입니다.

어느 날 제가 하나님께 그랬습니다. “하나님 저 이제 은혜 받은 사람답게 담배 그만 피울래요.” 했는데, 그때부터 바로 냄새 맡는 것도 구역질나서 아직까지 못 피웁니다. 지금까지 못 피우고 있습니다. “그것참! 신기하죠.” 스스로 생각해 봐도 꼭 거짓말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 그렇게 느려터진 ( 할일은 다하는데 지가 좀 느려유. 충청도출신이라서 그런지) 제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꾸준히 신바람이 나 있으니까 조금씩 진실로 믿어지기 시작 하나 보더군요, 특히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제 직업에 대하여 생각이 바뀌어서 열심히 일하면서 좋아하는 걸 보더니 처음에는 오히려 굉장히 슬퍼하더군요.

아마도 제가 너무도 삶이 지치고 힘들어서 날이면 날마다 바둑하고 씨름하면서 날 밤새고 그러더니만, 이제 모든 걸 체념하고 포기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면서 틈틈이 혼자서 컴퓨터도 배우고 뭔가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더니 드디어 제가 “은혜 받았다.”

하는 것이 참으로 믿어지는지 어느 날 그러더군요.. 아주 조심스럽게 오랜 동안 별러 오다가 용기를 내어서 말했을 겁니다. 제가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동안 여러 번 들었으나 들을 때마다 거절했었던 하기 힘든 말을 제 아내가 또 한겁니다.

“여보 우리도 이제 십일조 하면 안 될까? 사실은 벌써부터 말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버는 돈이라서 당신이 결정하고 십일조 헌금 했으면 좋겠는데, 이제 당신 도 ”은혜“ 받았으니까 그런 것 해야 하잖아” 이렇게 말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진작 에 말하지 하나님 만나 은혜를 받았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다음주부터 당장에 하자 구.” 그랬더니 너무도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십일조를 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그야말로 저는 “자타가 공인” 하는 “하나님 만나 은혜 받은 자.” 가 된 겁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이라고 생각 하실 분들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닙니다. 그래서 헌금에 대한 제 견해를 잠깐 설명 드립니다.

전 진정으로 감사함의 마음으로 그 뒤로 지금까지 십일조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가 굶어죽을 입장에 처할 정도만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허락 하시는 대로 계속 그렇게 헌금을 하려고 노력 할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하나님의 성경말씀 까지도 대부분 신뢰하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유는 그냥 감사해서라고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제가 받게 되는 물질 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물론 당연히 아니지만, 저 이외의 타인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영역까지 저는 참견할 재간이 없으므로 그냥 저한테 주시는 그 축복의 물질만을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중에서 십에 일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는 생각뿐입니다.

아무런 장삿속 같은 계산 없이 그냥 그렇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가 제 견해와 아무리 다른 설교의 말씀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겁니다. 저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물론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늘 함께하십니다. 그런데도 꼭 교회에 다니는 이유도 있지만, 그 설명 하려 던 게 아니므로 생략 하겠습니다.

하여튼 은혜 받은 사람 되니까 무지하게 좋더군요. 속으로는 너무도 늦게 철들어서 늘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하여,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 죽겠는데도 아무튼 하나님을 만난 것은 사실이니까 “저 하나님을 이제야 진짜로 만난 것 같아요”

이러고 다니니까 만나는 교인들 마다 교회 다니는 일가친척들 마다 엄청 축하해 주면서 좋아들 하시더군요. 조심스럽게 우려의 시선도 보내면서요. “저러다가 나중에 후회 하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아마도 이런 생각들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하나님 만나서 갑자기 출세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알고 계시는 분들이므로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를 했는지 아느냐.. 이제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강조를 많이들 하시더군요,

두 손을 모아 부르르르 떨면서 “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뻐하시는 저를 사랑하시는 교우님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약간 수준이 높으신 분들은 교묘히 말을 돌려서 하기도 하더군요. 노골적으로 저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고는 안하면서도 자신들의 능력은 좀 특별해서 그 영향이 훨씬 컷을 것이다.

이런 암시를 주면서 말입니다. 제가 영 못 알 아 채는 눈치면, 역시 “초보 은혜받은자” 라서 뭘 모른다고 생각 하시는지 엄청 안타까워들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초보 은혜받은자” 에게 좋은 조언을 해 주신다는 생각이신지 이런 사업을 하면 어떨까 저걸 하면 어떨까 하면서 코치도 해주고 그러더군요. 그럴 때에서야 알아들은 듯이 그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이 다 ㅇㅇㅇ 님 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차츰 좋은 사업구상도 생기겠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전혀 근거 없는 말들이 아니기도 합니다. 어떻든 기도들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니까 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이 한두번 이었 겠습니까?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것이 확실 할 테니까 말입니다.

또 그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믿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다고 믿습니다. 하여튼 그때 참으로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고 계셨구나 하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여기서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의 시각은 너는 이제 하나님 만나 은혜 받았으니 잘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됐을 때 내가 그렇게 열심히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을 배은망덕(背恩忘德)하게 잊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겠지요.

당연히 저는 그 부분을 진실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진실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온전히 믿어지지 않았을 때라면 그런 속들을 드려다 보면서 기쁘게 웃으면서 반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속이 울렁거려서 못 참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 보면서도 진실로진실로 감사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인데요. 어떻게 제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많이 혼났는데 말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된 원인이 그들의 내면에 치료 받지 못한 깊은 상처들 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게 됐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 능력이 부족하여 도와 드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너무나 슬퍼졌습니다. 따라서 죽는 날 까지 더욱 열심히 제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죽어서라도 도와 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선택한 방법이 좀 치졸하기는 했어도 그 뒤로는 제 아내가 참으로 저를 믿기 시작 했고 제 말을 솔깃하게 듣기 시작 했습니다.

늘 하던 말 또 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배집사(오랜만에 등장 하셨네요) 다니는 교회가 내분이 일어났는데요. 이유가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목사님께서 배집사 부부와 몇몇 중심적인 교인들을 데리고 새롭게 공부를 하러 다니셨습니다.

제 아내도 배 집사가 초청하여 함께 따라다닌 겁니다. 주로 목사님들과 목회자 사모님들을 대상으로 목회하신다는 잘 나가시고 있는 목사님 설교 들으러 말입니다.. 제 아내가 그 곳에 다녀 올 때 마다 호들갑스럽게 그러더군요. “K목사님 설교가 어떻게 당신이 내게 하던 말들과 그렇게 똑같은지 몰라. 그러니 당신도 다음에는 함께 가보자.”

아 - 이러는 겁니다. 제 아내의 생각은 아마도 제가 은혜 받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목회하시는 분들을 상대로 목회하신다는 능력 많으신 분들과 생각이 같아졌다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그때 속으로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여 가볼까도 했는데 일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목사님이나 목회자 사모님을 상대로 설교를 한다면, 모든 설교가 “사랑하라” 의뜻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꾼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오묘한 어떤 율법적인 것을 가지고 설교 한다면 씨도 안 먹힐 거라고 말입니다.

그 분야야 말로 개척교회에서 목회 하시는 대부분의 목사님들 모두가 전문가중에 전문가 들 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겨우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적인 교리와 맥이 통했을 겁니다. 하여튼 그러면서 신앙에 대하여 점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보니까 c3tv설교방송이 인터넷에 있어서 들어가 보았는데요. 너무나도 존경스러운 목사님들이 거기에 다 계시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틈나는 대로 좋으신 목사님들 설교 말씀 많이 듣고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높은뜻숭의교회” 의 김 동호 목사님 열렬한 팬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보면, 제 아내에게 제가 해주던 말과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해 주실 때가 참 많거든요,  그럴 땐 잽싸게 아내를 부르죠, “여보! 여보! 빨리 와봐 이번 주 목사님 설교 너무 너무 은혜가  되는 것 같다. 잘 들어 봐봐..”  그렇게 불러서 함께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말씀을 듣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흐뭇한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제가 참으로 존경하게 된 김 목사님을 제가 찾아가서 이렇게 부탁드린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 목사님 있잖아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생각하고 있는 성경교리가 목사님의 설교말씀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제 아내가 제 말은 잘 믿지 않아서 그러는데 목사님께서 어떻게 제 대신 제 아내에게 말씀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하여튼 그런 후로는 날이 갈수록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아내가 제 말을 믿어 주었는데요, 그런 믿음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제 아내에 대하여 아내의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순수한 영혼을 신뢰하고 믿고 있고 특히 3년 전부터는 아내로 인해서 깨닫게 되었으므로 제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자신보다는 많이 덜 순수한 저에 대하여 항상 어느 정도 경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그동안 순수함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입게 된 잘못 입력된 신앙관에 기인했었다고 저는 믿고 있으며 결국 그 생각만큼은 옳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제 아내의 신앙이 저보다 아주 어린 것처럼 보이는데요.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얼마나 순수하게 깨끗하게 의심 없이 정직하게 그렇게 깊이 믿을 수 있느냐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게 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부분에 대하여 제 견해를 좀 말씀드리고 넘어 가겠습니다. 그렇게 맑은 영혼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처음에 믿게 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믿게 되면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 그 순수함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그런 정말로 아름다운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목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을 그 말씀만을 전달하는 그런 목회를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통이 이루어져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진정한 사랑”만 이루어진다면, 성경에 나와 있는 율법적인 것들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3년 전에 저는 너무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이 그렇게 잘 안 되는 걸까요? 그것은 목회 하시는 분들의 내면에 있는 상처들과 출석교인들의 내면에 있는 상처들이 너무도 커서 그럴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는 있지만, 알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랑타령만 하고 있다가 언제 교회가 부흥이 되겠는가? 하는 조급함 때문에 그럴 겁니다.

교인들 모두가 율법에 따라서 성실하게 말 잘 들으면 그런대로 어떻게 교회가 잘 운영될 것도 같은데, 하는 진실한 사랑이 빠져버린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런 생각들이 곧 제가 말하는 상처들입니다. 설교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들이 잘못됐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안에 온전한 사랑이 들어 있다고 믿어지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상처받고 그걸 치료하려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이 믿어 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예를 든다면 이렇습니다. 환자가 병원에 찾아가는 것은 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일겁니다. 그런데 병원에 찾아간 환자에게 의사 선생님이 만사 제쳐두고 이유야 어찌됐든 치료부터 해야지 - 너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느냐고 하면서 그 잘못한 원인만 나무라고 있으면 언제 병을 치료한답니까?

또 돈 가져 올 때 까지 치료를 못해 주겠다고 한다면 병이 저절로 치료가 됩니까. 그런 의사가 있다면, 존경받는 의사들이겠습니까? 한마디만 더한다면 10년을 입원해 있어도 치료되지 않은 환자에게 “너 이 나쁜 놈아 왜 병이 호전되지 않는 거야” 이런다고 병이 치료가 될까요?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사랑이 그리워서 갑니다. 상처받은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받고 싶어서 교회에 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제 이야기를 끝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아내의 근황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주인공은 어떻든 맨 나중까지 등장해야 하니까요. 요즈음 제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제 아내는 막 결혼했을 당시의 신혼시절처럼 그렇게 명랑하고 순수하게 변했습니다. 또 열심히 성경책 읽으면서 그리고 기도하면서 늘 찬송가 소리 높이 부르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제 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늘 관심을 가지고 제 글을 읽어 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참으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수 만 번을 감사 드려도 모자랄 겁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렇게 끝까지 글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무한감사를 드립니다. 예수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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