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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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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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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께 편지를 올립니다.

어머니께 편지를 올린 기억은, 그러니까 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군복무 시절 저는 어머니께 간간이 편지를 올렸더랬습니다. 어머니는 맏이인 제 편지를 받아들고서 떠듬떠듬 읽으시다가는 답답하셨던지, 동생들을 불러 다시금 큰 소리로 읽게 하셨다지요. 그리고는 답장을 쓰시기 위해 예의 동생들을 불러 대필케 하여 속 깊은 애정을 드러내시곤 하셨지요.
"아들아,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상관 말씀 잘 듣고 몸 성히 지내거라... 어미는 널 위해 낮이나 밤이나 기도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어머니의 친필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 쓴 짤막한 어머니의 친필 편지를 받은 것은 제가 입때껏 살아오며 어머니로부터 받은 단 한 통의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며 그만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철자법이며 띄어쓰기는 고사하고 도무지 문장이 되지도 않는 글이었지만, 어머니의 마디 굵은 손으로 아마 밤을 새워 썼을 지도 모를 그 편지는 아들을 향한 당신의 뜨거운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인 듯싶습니다. 학교에서 나눠 준 가정환경조사서에는 부모님의 학력을 기재하는 란이 있었는데, 그 때서야 저는 두 분 다 학교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망설이다가 저는 '국졸'이란 허위학력을 적어 내곤 하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빈칸으로 놔두는 것이 더 떳떳했을텐데도 말입니다. 그 후 어머니는 동네 예배당에 열심히 나가시며 어깨 너머로 한글을 익혀 성경을 읽으시는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한 봄날입니다. 지금쯤 어머니는 길 아래 묵정밭에 고추 모를 이식하고 마늘밭에 덧거름이며 본격적인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으시겠지요. 아버지께서도 모내기철을 맞아 논두렁을 매만져 논물을 가두고 써레질을 하다보면 하루해가 마냥 짧기만 하겠지요. 농촌의 일과라는 것이 새벽에 시작하여 날이 저물어 어두워야 끝나는 것이기에...... 때때로 저는 직장에서의 일과가 힘이 들고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면 오히려 제 부끄러움이 되곤 한답니다. 그렇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생활 자체가 제겐 아주 소중한 삶의 교훈이니까요.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니가 더욱 그립습니다.
하지만 벌써 사십을 훌쩍 넘긴 제 기억 속에는 솔직히 어머니의 무서웠던 일면이 없지 않습니다. 유난히 작은 체구지만 '네 엄마는 키는 작아도 아주 당차지... 암!', 약주라도 한잔 드시고 거나해지신 날이면 아버진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어머니 나이 열 아홉, 스물 다섯 아버지께 시집올 적, 친정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층층이 어린 네 동생은 언니야, 누나야 시집가지 말라며 울었다지요. 막내 이모는 그 당시 갓 돌이 지난 나이였다니 그 정경이 상상이 갑니다. 게다가 아버지 또한 칠 남매의 맏이로서 시동생인 막내 삼촌도 갓 돌이 지난 어린 나이였다니, 어머니의 고생 줄은 여간 견고한 게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한 지 이듬해 칠 남매를 남겨두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이번엔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아버지마저 늦은 나이에 갑자기 6.25 동란에 징집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농사지을 만한 변변한 땅 마지기도 없어서 소작농으로 연명하셨다는 옛 이야기를 하시며, 어머니는 애써 눈물을 감추셨지요. 그러기에 응당 어머니는 억척스럽다못해 여장부로서 행세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참전한지 5년 만에 아버지는 부상에서 채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제대하셨고 어머니는 이듬해 맏이인 저와 내리 두 살 터울로 남동생 셋과 늦둥이 고명딸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나은 어린 자식들이 때로 말도 안 듣고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우리 모두를 안방에 몰아 넣고는 골고루 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동생들을 아껴주지 않고 싸움질했으니, 큰 녀석이 먼저 맞아야 한다시며...

어머니! 참으로 많은 인고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철부지 어린 오 남매를 호령하시던 어머니의 당찬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자꾸 여위어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지만, 그럴수록 어머니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와 땀으로 어린 오 남매는 이제 어엿하게 장성하였습니다. 당신 배우지 못한 까막눈이 서러워 무섭게 일하시며 품을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던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의 소원은 고관대작을 꿈꾸기보다는 모름지기 선한 일에 힘쓰며 사는 것이 더 복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니, 그리 따르고 싶습니다. 어머니께 편지를 올리는 이 시간,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인자하신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작년 겨울, 벼르고 별러 부모님과 함께 저희 오 남매, 전 가족이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여간 흐뭇해 마지않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 다시금 어머니를 나직이 불러봅니다.
지난 주일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말수를 줄이고 목소리를 낮추고 살아라!..." 어머니! 그러겠습니다. 어머니의 일생이 기도와 낮은 목소리이듯 저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햇볕은 뜨거워지고 논밭에 할 일은 한층 많아지겠지요. 어쩌면 오늘도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텃밭에 엎드려 김을 매시겠지요. 김을 매지 않으면 곡식이 제대로 자랄 수 없고 결실하기 어려운 법, 어머니! 저도 제 마음 밭에 해로운 잡초를 뽑아내며 어머니처럼 부지런하고 유익한 삶을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햇살 따사로운 날! 오늘따라 어머니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아니 고된 노동을 벗삼아 자식을 키우신 어머니의 붉은 팔뚝이 그립습니다. 그 진한 땀방울과 뜨거운 눈물이 제 가슴에 스며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맏이 기훈 올림(2000.05)

* 벌써 오래된 편지가 되었네요.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은 분이 없으시겠지만, 전 어머니 앞에 언제나 철부지 아들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한 말씀하셨습니다.

- 얘는 원제 철들라나 모르것네!


   http://column.daum.net/daman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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