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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작은 사람 작은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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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에서 철거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함께 어렵게 사는 목사님에 대하여 나온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똑같이 신학교를 나왔는데 어떤 사람은 큰 교회에서 사택도 받고 사례도 제대로 받고 대접도 받고 존경도 받고 목회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판자집에서 저렇게 내일이 없는 아슬아슬한 목회를 하시는지....

그러면서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지요. 그러나 지금도 저는 생각만 했지 고난받는 자들의 반열에 서있지 못한채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 있는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전에 섬겼던 교회는 학생들 모두 합쳐 약 500명 가량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은 늘 그렇게 말씀 하십니다. 큰 교회 유명한 목사로 살면 아마 이땅에서 상급을 다 받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받을 상급이 있겠는가, 그래서 당신은 유명한 목사가 되지 않게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실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큰 교회를 목회 하는 것이 겉으로는 쉬워 보이겠지만 내면적으로는 얼마나 힘든가? 따라서 그만한 어려움을 또한 이기고 견디는 목회자이기에 하나님께서 또한 받으시고 상급도 주시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부자의 고충과도 같은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드냐는 주님의 말씀 앞에 너저분한 부자의 고충을 부자들이 나열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늘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다고 가르치고 내면의 의미만을 가르칩니다. 그대로 실천하는 용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명령도 무조건적으로 실천하는데 거부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신학교에 실습연수 과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사나 선생님이 되는데도 실습이 있으나 신학교는 실습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경험을 최고로 여길때가 있고 교만 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영성과 인격과 여러가지의 것으로 사람들이 몰린다면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부흥이라 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몰리게 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수적인 증가를 놓고 자랑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역으로 영성의 척도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거꾸로 적용을 하는 것이라 봅니다.

생각의 전환은 우리의 교회의 개혁을 가져올수가 있습니다. 지금 그러한 때인것 같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하여 반미 움직임이 많이 나타 났습니다. 그것을 용공으로 몰고 가던 시대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평신도의 의식 전환에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막연히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습성, 그리고 목회자 1명의 설교 자체로 교회를 평가하려는 성향, 그리고 단순하게 구색 갖추기 식의 선교, 복지, 제자화 훈련 등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시설에 봉사를 오시는 교회의 분들을 보면 거의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옵니다. 꿈 많은 18세 소녀, 소년으로 돌아 간 듯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낭만적으로 봉사를 하시고 자기 만족 가운데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걱정하고 근심하며 그 어려움의 중심부에 서서 함께 하시려는 분들은 몇 명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부터 그렇습니다. 일하러 오시는 목사님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설교하러 오시지...

저도 목사로서 교회를 섬기면서 설교를 잘하시는 목사님은 그다지 부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목숨건 목사님들 앞에는 얼굴을 들수가 없더군요. 저는 그런 목회를 배우고 싶습니다.

경주 예티쉼터 정의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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