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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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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교만한 율법사들에게 계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율법이야말로 최고의 하나님 말씀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던 율법사들에게 말입니다.

“첫 계명은 이것이니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두 번째 계명은 이것이니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야 말로 율법인 동시에
선지자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지지 않았던
그 옛날 이런 예수님의 계명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라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너무도 쉬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생각했었습니다.
당연하지 이웃을 내가 나를 위하는 것처럼 위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런데 그렇게 해 보라지.. 그것이 과연 현명한 짓인지..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분이
세상에 대하여 그렇게도 모르시는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가?

“정말로 참으로 시시하다” 이렇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이 조금씩 믿어지면서
현명하게 세상을 살면서는 좀 덜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장사하기 좋은 말이었으니까요..

나에게 잘해주는 이웃에겐 나도 잘해주고,
나에게 사랑을 베푸는 이웃들을 보면,
나도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러면서 늘 터진 입이라고 말을 많이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마음속으로 늘 더 많은 이웃들이 그렇게 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그러는 내가 속으로 대견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한편, 그렇게만 되면 세상이 곧 천국도 될 것 같았습니다..

내 이웃들이 자기들을 위하듯이 그렇게 나를 위해 준다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겠습니까? 바로 천국이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보니까 내 이웃들이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 그런지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의 언행을 한답시고,
열심히 이웃들을 위해 봉사도 해보고,
빌려준돈도 더러 못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어리숙하게 살아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나는 것 같았지만,
뒷날의 더 큰 하나님 상급을 기대하면서 참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내 이웃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끝끝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 화가 났지만,
그래도 그냥 성자라도 된 듯이 참고 참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편하게 대접받고 싶은 욕망이 밀려왔지만,
꾹꾹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어리석은 짓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현명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방법을 생각하다가 얻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래 내가 편하기 위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이따위 쉬운 계명 따위는 잊어버리자.”

그리고 좀더 어렵고 오묘한 율법의 말들을 연구하고 배워보자.  
그리하여 그걸로 저들의 기를 죽이고,
나는 편하게 살아보는 거야

그래서 나름대로 책들을 읽어보고 성경공부도 좀 하다보니
내 이웃들보다 내가 뭔가 좀 많이 아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그때부터 나는 손가락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고고한 사람이 되기 시작 했습니다.

더이상 나는 손해나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무식한 이웃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걸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기 좋았습니다..
갈수록 나는 당연히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인줄 내 이웃들이 인정해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부수입은 내 이웃들이 나하고 언쟁하기를
기피하기 시작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이웃이 나와 언쟁을 벌이면,
반드시 더 많은 지식들을 어떻게든 습득하여 복수를 했으니까요.
그래도 당할 수 없었던 이웃이 있었다면, 아마도
곧바로 내 원수가 되었을 겁니다...그래서 거래 끝..^^*
다행히도 아직까지 그렇게 거래 끝난 이웃이 없는걸 보면,
어지간히 그런 속마음을 은폐하는 기술도 있었나 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인간이 덜되어 보이니까 슬그머니 내 곁을 떠난
존경스러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이 시시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위에 율법” 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겁니다..
내가 과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 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생각하니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심지어는 평생을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살고 있는
내 아내에게조차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 했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한없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큰아이 임신했을 때 아내대신 입덧도 했지만, 그것으로
산고의 고통을 대신하기엔 너무도 초라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입이 있어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없이
한없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고 있는
모든 이웃들에게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모든 걸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용서해 주신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용서해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지고 나니까..
더 이상은 편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졌습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진실들은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시면서
다 알고 계시므로  한없이 감사하며 행복합니다...

내 아내가 내 아이들이 내 친구들이 내 교우들이 갈수록
진실한 믿음으로 나를 대해 주니 행복의 절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군요." 하는 사실이 믿어진것은
이제 겨우 3년이 됐지만, 3년간 느낀 행복은 내 생애 45년동안
살면서 느꼈던 행복보다 오히려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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