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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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튱격고백!
나는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였다.

나는 실로 엉덩이 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뿔이 수십 개가 난 송아지였다.
그래. 그랬다.
거기다 하룻강아지이기까지했다.

이런 말들에서 송아지나 강아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어리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리다는 것은 미숙하다는 것일텐데, 그때의 나는 자신의 미숙함을 보지못하고 그 미숙함이
라는 구부러진 잣대로  판단을 했었다. 지금의 글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고백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의 삶은 예수님으로 인해 늘 행복하고 기쁜 삶의
연속이었다.  그때 나와 함께 예수님을 영접한 친구들은 부흥회를 많이 다녔었다. 아니, 나이
도 어린 우리들이 어찌하여 그렇게 부흥회를 많이 다녔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몇 번씩
그렇게 부흥회를 다니게 되었던 것 같다.

심지어 우리는 그 부흥회를 가려고 학원을 빼먹기로 결심했다. 그 때 학원선생님은 학원에
빠진 아이들에게 꿀밤을 주었었는데, 그 꿀밤이 대낮에 별을 만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 꿀밤은 안 맞아본 사람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은 학교 다니시며 한때 야구도 하
셨고, 친구분 중에 유명한 야구선수가 있다고 자랑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강속구
를 던지는 그 힘센 손으로 우리의 연약한(?) 머리에 꿀밤을 주실 때, 우리의 머리는 공을 받
아내는 글러브와 같은 역할을 해내야만 했던 것이었다.-느낌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굳건히 우리는 '주를 위해 맞으리'까지 각오를 하며 주일에 부흥회를 참석할 정도
였다. 솔직히 그때까지 우리들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선생님께 맞아본 일이 없는 모범 소
녀들이었는데도 말이다.ㅎㅎ

어쨌든, 첫사랑의 감격과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은 매일 매일 새로움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찌 어찌하여 P양의 교회에서 예배를 같이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면서 내 마음에서 서서히 뿔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는 입이 근질 근질하여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그 교회 내 또래의 자매에게 실수를 하고 말았다.ㅠ.ㅠ-물론 그때는 내가
실수를 했다고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자매님, 자매님 목사님 말씀이 은혜가 안되네요"

세상에... 예수님을 영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내가, 목사님의 말씀이 은혜가 있는지
없는지를 어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까지 나는 주로 부흥회를 많이 다녔었고, 부흥회 목사님들의 말씀은 주로 재미가 있었
는 반면, 그 목사님의 말씀은 내 귀에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 그런 말을 하게 만든 이유
였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그때의 판단기준이 '재미'라는 잣대였다는 것도 시간이 지나니
깨달아진 것이다.
나는 재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말씀을 판단하는 어리고 어리숙한 초신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도 내가 잘못한 줄 조차 모르는 어린 자였다.

그런데 그때, 나의 어리석은 말을 들은 그 자매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렇지만, 그 자매는 그냥 웃어주었다. 그 자매님 아마 그랬을 것이다.

'때가 되면 알게 되실꺼예요.'

시간이 흐르고, 믿음이 성숙할수록 그때의 사건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하였다.  
이 사건은 기억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나의 어리고 미숙한 판단의 잣대로-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나중에 깨닫게 되는-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고 살았을까?
그때는 그것이 옳아보이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큰 소리로 주장을 하지
만,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큰 부끄러움이 남는지...
내 목소리가 지금 크다면, 내 주장이 강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내가 지금 실수를 범하고 있
다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의 성숙이란... 겸손하게 되는 것,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입술의 말보다 기도하는 것, 율법보다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나의 어리석은 말을 웃음으로 받아준 그 자매처럼, 미숙한 상대가 자랄 때까지 기
다려 주는 것. 품어주는 것일게다.

그 사건이 있고 몇 년 후, 나는 그 목사님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되었다.
그것도 학교 채플시간에 그분이 강사로 오셨던 것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것를 말하라 한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목사님이 주신 하나님 말씀이 꿀송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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