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사랑의 화신(化身)

첨부 1


    
테레사 수녀님..누구라도 수녀님의 넘치는 사랑을 압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평생을 헐벗고 굶주리는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면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수녀님을 사랑의 화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크신 능력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수녀님께서 한번에는 오직 한사람 밖에 사랑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 그것을 늘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수녀님의 참사랑이 가슴 절절히 느껴집니다.
더 많이 더 많은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수녀님의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나는 성도랍니다.. 그래서 이단인지 삼단인지 하는 것들 잘 모릅니다..
수녀님은 천주교에 소속된 분임을 잘 알고 있고 나는 개신교회를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성도인 저의 무식함을 탓하시며 천주교는 이단이니
이단에 속지 말라고 친절을 베푸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녀님의 그런 성스러운 사랑까지도 매도하려 합니다.
단지, 천주교에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랑이란게 도대체 뭘까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하신 하나님 말씀이 틀린 걸까요?
나는 성도라서 복잡한 율법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성심을 다하고 자신의 목숨을 다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웃들을 보면 무조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자신의 유식함을 뽐내며 자랑은 하면서도
이웃의 아픔을 보면서는 외면하는 사람들을 나는 더 이상
존경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율법들을 알고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한번더 확인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성도랍니다..
그래서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것들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어느날 성도가 된 까닭은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되기 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심이 믿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엄청난 학식을 갖춘 유식한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영웅들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똑똑한 사람들 중 “일부 멍청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입만 가지고 편하게 살고 있는 분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웃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다 혹은 저렇게 하는 거다..
이렇게 말로만 하는 똑똑한 사람들 말입니다.

육체노동은 무식한 사람들이 감당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이웃사랑의 수혜자들은 당당하게 유식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차지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당연히 나도 그러고 싶었고,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왜냐하면, 똑똑한 사람들 공부할 때 무식한 사람들
편하게 놀았으니까.. 무식한 사람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겁니다.

그때는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말로
늘 부끄러움의 대상 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적이 될 수밖에요..
당연한 일입니다. 나에게 돌아올 혜택들을 그들이 가로채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믿어진 뒤로는 많이 안다는 것 보다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늘 더 안타깝고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언제까지나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지만,
내 이웃들을 핍박하는 용도로 사용될까.. 걱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믿어진 뒤로는 예전에 보이지
않던 이웃들의 내면의 아픔들이 왜 그리도 많이 보이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초연한척하여도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고통을 인내하며
한없이 “화”를 참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보입니다..

드러내놓고 밖으로 내 놓고 치료받고 싶어도 그러다가는
자신의 무능력함이 발각되어
수혜자의 대열에서 방출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랑하는 이웃들 내면의
아픈 상처들이 보입니다.

똑똑하기 그지없는 상처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이
상처들을 .. 끓어오르는“화”를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나 혹은 자부심으로  버텨보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치료해 보고자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도 초라하고 궁상맞아 보입니다..

참는 것이 사랑인줄 알고 열심히 참고 살아가는 착한 이웃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던 옛날의
내 삶이 생각납니다.

내면에 곪아터진 상처들을 끓어 안고 있으면서 그래서 너무도
아파서  겉으로 드러내 놓고 치료받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나의 무능력함이 탄로날것이 두려워서  

늘 가증스런 웃음을 흘리며 살던 그때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믿어지지 않았을 때 나의 과거에는
늘 참아야 했습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지는 순간부터
고통의 원인들이 소멸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믿어지던 나의 이웃들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수많은 이웃들이,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참지 않아도 되는 고통들을 끝없이 참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을지 그래서 지금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도 조금이나마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늘 가득합니다..

그러나 나의 작은 능력들로 인하여 많이 도와드리지 못하고,
겨우 몇 줄 글이나 올리고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깝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의 안타까움이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지만 수녀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셨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존경하는 목사님 그리고 전도사님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
많고 많은데..하필이면 수녀님을 들먹여서 송구스럽군요..
나는 아직 성도랍니다.. 그래서 뭘 잘 모른 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