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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진리를 위하여 일관성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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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신념과 신조를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걸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믿어 왔던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더욱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처어칠은 정당을 두 번씩이나 바꿨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 문제에 대한 입장도 여러 차례 바꿔 나갔습니다.
"나는 일관성보다는 옳은 쪽을 택하겠다"는 게 처어칠의 견해였습니다.
그가 때때로 세론의 비판과 빈축을 받으면서까지 소신을 바꾸게 되었던 것은 '새로운 사실'들, 곧 새 정보를 잘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판단 착오를 시인하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으며, 상황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유연한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코 고집쟁이가 아니었으며 자기 소신을 굽히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자질 때문이었습니다.  
- 리더와 보스중에서

    
어제 뉴스를 통해 5.18기념식을 위해 광주에 들른 노 대통령이 전남대학교에서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대답한 장면히 생각납니다.
  "대통령께서는 선거전에 하신 말씀과 당선후의 말씀에 일관성이 없으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마음이 변하셨는지 답변해 주십시오."
  "예! 제가 선거 전과 후에 마음이 바뀐 것이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제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찾다보니 자
   꾸 변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 시국을 위해서 제 마음을 바꾸어
   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더군요."
저는 대통령의 이런 말을 보면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지 않고 자신의 말을 자주 바꾸어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 분의 말을 통해 정직성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나님께 저질러 놓고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감추고 또 합리화하여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한 채 살아간다면 정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여 얼마든지 눈과 귀가 가리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진리(옳은 것)를 위하여 이전의 말을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용기도 하나의 정직함 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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