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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개혁의 주체는 주님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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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고백한 것과 같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고백한 후에 바로 하는 말이,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새로워져야 하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고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서로 사랑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어야 하고 정의를 행해야 하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외침은 오늘날 소위 뜻 있는 목사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소리이며 자신들의 인기를 관리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교회가 그 본래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교회에 소속된 교인들이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그 말씀을 잘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올바른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제도에 따라 올바로 살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결국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다고 고백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교인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한다는 결론이 난다.

일반인들이 들으면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참으로 믿음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이나 장기 기증 운동이나 불우한 이웃 돕기 운동이나 실업자 구제 운동이나 밥퍼 주는 운동이나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교회가 바로 세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요 18:36).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이 세상 나라의 입장에서 평가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세상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려고 할 이유도 없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면 그 곳에 소속된 사람들이 아무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서로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해도 그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교회는 그런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세상을 위하는 일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심판을 선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교회를 바로 세우자는 말이나 교회를 개혁하자는 말이나 교회가 침체되었으니 부흥시키자는 발상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말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런 논리가 성립된다면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교회가 인간들에 의해서 변질될 수도 있고 개혁될 수도 있고 침체될 수도 있고 부흥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고 만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서는 인간들의 뜻은 완전히 깨어질 수밖에 없는 나라다. 인간의 의와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천국과 인간의 평화가 깨어지고 대신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에 의해서 교회가 개혁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이 구약성경에서 한결같이 외치는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를 믿는 자들이 구약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선포하고 그 성취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교회가 아닌가? 인간들에 의해서는 세울 수 없는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셨기에 그 나라를 은혜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그 나라만이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며 그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셨다는 이것이 아닌가?

이런 교회는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롬 8:37~39). 그러므로 그 교회에 붙어 있는 자들은 걱정할 것이 없지 않는가? 만약 세상의 세력에 의해서 또는 인간들의 잘못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교회라면 그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그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없지 않는가?

교회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이 완전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완전하고 그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완전한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이 자랑이지 자기들이 완전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자로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자들이라면 바른 교회를 세우자고 외치기보다는 주님의 몸된 교회는 완전한 교회라고 외칠 것이다. 완전한 것이 왔기에 불완전한 것에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완전한 것만 바라보자고 할 것이다. 이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리 거룩한 예배를 드려도 그것은 사교 집단일 뿐이지 교회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잘못되었다거나 교회를 개혁하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교회에서 외쳐지고 있으며 그런 외침에 대해서 반박이라도 하면 믿음이 없다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을 보는 것과 같이 드문 일이다.

교회가 왜 이런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그 몸에 합당한 내용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으며 그 교회는 죽음의 세력이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다(마 16:18). 그렇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인간이 할 일은 하나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들에게 잘 운영해 보라고 하신 후 하나님 나라로 가신 것이 아니었다. 교회를 세우시고 끝까지 교회와 함께하시면서 그 교회를 다스리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죽음의 세력조차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친히 다스리시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이 다스리고 운영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이미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발상 그 자체는 이미 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완전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세력도 어쩔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교회가 완전하지 않다면 그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 역시 완전하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묻는다. 즉 그런 말은 단순한 이론이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즉 그렇게 말하는 너라면 과연 그런 교회를 세울 수 있느냐고 묻게 된다. 나의 말은 내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께서 완전하게 세우신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죽음의 권세도 이기지 못하는 완전한 교회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그 교회의 일원으로 택함받은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다. 누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고는 이 말을 이해할 자가 없다. 그러기에 이 말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한 마디로 그것은 극단적인 말이라고 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각에서 크게 앞질러 간 생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복음 그 자체는 극단적인 것으로는 안되고 차원이 다른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복음이 극단적인 것인가?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거듭나지 않고는 알 수도 없으며 그 교회에 소속될 수도 없다.

모든 교회가 교회에 대한 정의는 성경 말씀대로 고백하지만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앞질러 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빛과 소금이 되자는 외침은 사회의 어두운 곳을 치료하자는 외침은,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일에 대적하는 차원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는 차원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차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움이 있어야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이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창세기 3:15의 약속에 근거하여 생겨난 것이며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의 성취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다(사 40:10,11; 렘 31:33,34; 겔 36:25,26).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워 놓고 너희들끼리 잘 해서 하나님의 칭찬을 듣도록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곳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생겨났고 유지되는 곳이다. 주님은 교회를 세워 놓고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교회를 다스리시고 계신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교회에 소속되었다고 해도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잘 해 보자고 하는 발상 자체가 주님은 이제 필요없다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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