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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32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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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중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 아이들 봄소풍에 보낼 과자 몇 봉지와 음료수를 사들고 아파트 안으로 막 뛰어 들어갈 때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낯이 매우 익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김 목사님, 아니십니까?"
  "아… C 목사님?"
  "예, 저 C 목삽니다."
  "아이고…이게 얼마만입니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맞잡았다. 그는 8년 전 내가 소안도(所安島)에서 사역할 때 서로 이웃한 마을 교회를 섬기던 동역자였다. 그런 그를 약 4년만에 만난 것이다. 나는 반가움과 놀라움에 그에게 물었다.
  "근데 목사님, 여긴 왠일이십니까?"
  "…목사님…여기 사세요?"
  "예, 여기 산 지 2년 됐습니다만…."
  "그래요…저…지금 우유배달하고 나오는 길입니다…보통 새벽 두 시부터 네 시까지 하는데…오늘은 수금(收金) 좀 하느라 늦었네요…."
  "…아니, 뭔 우유배달을…"

  순간 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사실 소안도에 들어 가기 전에 보증을 섰었는데…그게 일이 터져서…있던 것은 빚쟁이들이 다 가져가고…."
  "…얼마나 되는데요?…"
  "5천만원쯤요…단돈 십원이라도 만져나 봤으면 덜 억울할텐데…."
  힘겹게 살아온 지난 몇 년이 사무쳐서인지 그의 눈은 이내 젖어 들었다. 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목사님…애기가 하나던가요? 둘이던가요?"
  "둘입니다. 목사님이 교회 옮기신 뒤 저희도 나왔는데…섬에서 나와서 하나 더 낳았습니다."
  "그럼, 생활은 어떻게?"
  "…사실 둘째를 낳고는 분유값커녕은 쌀 팔 돈도 없어서 굶기도 많이 했습니다…그래도 처자식 데리고 먹고 살자니 뭔 일이든 해야 하는데…일자리 찾기가 너무 어렵네요…."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였다.

  "…사모님은요?…"  
  "…아내도 척추가 좋지 않아서…수술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목사님…형제들 많잖아요?…좀 안 도와줍니까?"
  내 말에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죽으나 사나 목회를 해야겠는데…한 4년 이러고 있으니 오라는 데도 없네요…."

  너무도 안타까왔다. 그에게 우리 집 동 호수와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한 뒤, C 목사님 가정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보름 뒤, 아내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전별금 명목으로 웬만한 가정 한 달 생활비 정도의 금액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 응답으로 알고 그 돈을 C 목사님 가정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런데 연락처를 몰랐다. '이럴 때 C 목사님이 전화라도 한 번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동안 십 여 일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가족과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 주유소에서 세차(洗車)를 해주고 있는  C 목사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주일(5월 18일), C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에게 한 번 만날 것을 간절히 요청했고, 그와 사모님은 조금 늦은 시간에 두 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그간 어찌 지내셨느냐?'는 내 말에 사모님은 이내 눈물바람을 하셨다. 목사님이 꼭두새벽부터 우유배달, 신문배달, 주유원 등의 일을 하는 동안 사모님은 어린 것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전자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정작 슬프게 한 것은 그들의 이러한 처지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말이었는데, 특히 대놓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거나 이제 목사직분 떼버리고 살라는 등의 말을 들을 땐 절망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밤 10시가 넘는 것을 보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내 질문에 C 목사님은 마침 친구의 소개로 모 생산업체에 취직이 되어, 일주일 내로 광주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로 이사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몇 년 고생하면서 빚을 청산하고 나서 다시 목회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내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자신과 가정을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게 세워가시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아파트 입구까지 C 목사님 가족을 배웅하던 나는 미리 준비한 봉투를 사모님에게 건넸다. 한사코 물리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사랑합니다"하는 말과 함께 봉투를 꼬옥 쥐어드렸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애써 웃어보이는 C 목사님에게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고 말하며 나는 맞잡은 손에 짐짓 힘을 주었다. 그렇게 C 목사님 가족이 돌아가고 난 자리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노라니, 가슴 깊은 곳에서 이 한 마디가 절규처럼 터져나왔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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