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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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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이렇게 자라왔다" 라는 주제로
"노스웨스턴 영재 의대 입학을 위한 수필:
성장 괴정에 대한 에세이"를 읽어보면서 아버지의 꿈의 놀라움과
도전을 같이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이 글은 강영우 박사의 큰 아들이 쓴 에세이지만
내가 감동하는 것은 바로 그 아버지 강영우의 꿈을 보았고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그가 기울였던 노력의 열매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이러한 꿈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믿음에서였다는
것에서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리라 믿으며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래의 글은 어둠을 비추는 한쌍의 촛불이란 글에 나오는 글입니다.

    

나는 교육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러기에 "공부" 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히 들어온 단어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교육학자인 아버지는 내가 영재라고 믿었지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나도 나 자신이 영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와 4학년때 영재 판별에서 거듭 탈락했으나
포기 하실줄 모르시는 아버지는 나를 영재라고 하시며 계속 격려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노스웨스턴대와 퍼듀대학에서 여름 방학이면 영재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나의 성적이 향상됨은 물론 내 능력에 대해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재학시 우리 "미래 문제 해결팀"을
직접 코치해 주시어 경연대회에서 2년을 계속해서 인디애나주
전체에서 입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내가 지방 수학 경연 대회에서 일등을 하고 주 전체 경연 대회에
나갈 때도 도와주셨으며 스피치 경연 대회에 나가기위한 스피치도
열심히 듣고 고쳐 주시곤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성가대에서도 활동하도록 격려해 주셨고
학생회 회장단 선거에도 출마하게했다.

9학년이 되었을 때,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전 학년에서 일등을 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내가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니" 하시는 것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더 큰 성취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 총무로 당선이 되는가 하면 인디애나
전체에서 디베이트(Debate)2등을 하는 영광을 안았다.
10학년이 될 때 재학하고 있는 먼스터 고등학교에서
나의 명성은 가히 놀랄만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해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삶의 태도를 본받아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국 최고 명문 사립 고교로 알려진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에
전학 시험을 보아 합격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었다.
너무나 머리가 좋고 재능 있는 학생들 틈에 끼어 다시
내 명성을 날리고 공부도 잘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괴제였다.
"내 머리가 그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닌가 봐,
여기서 내가 성공할 수는 없지"
라는 소리를 내 자신에게 하곤 했다.

"아버지 반응은 어떠하실까?
아마도 내가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곳의 경쟁적인 분위기를 아버지가
과소 평가하신 탓 일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도 안되어 다시 아버지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최고 높은 우등생 중에 당당히 끼게 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축구와 야구 선수로도 활약하고 드라마,
방송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학생회 임원으로도
선출되어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오늘날 내가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아버지 덕분이다. 우리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에게
"너희 아버지는 완전 맹인으로 외국어를 가지고 박사 학위도 받고
국제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두 눈을
뜨고 모국어로 너희 아버지보다 다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이 사회에 더 크게 공헌 할 수 있다" 고 종종 말씀하셨다.
내가 모험을 좋아하고 도전하여 극복하려는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다.

내가 의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게 된 것도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두 살때 아버지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못 본다는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 눈을 고쳐드리고 싶었다.
그때 나는 의사가 되어 아버지 눈을 고쳐 드릴 결심을 하였다.
후일 아버지 눈을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훌륭한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고 남을 돕고자하는
의욕에는 변함이 없었다. 의사가 되겠다는
야망 때문에 고교생으로 퍼듀 대학에서 분사 생물학을 공부했고
지난여름에는 재활 병원에서 한달 동안 일을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6주동안 스페인에 교환 학생으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능력 있고 인정 많고 사회에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내 꿈은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내 비젼과 꿈은 부모의 사랑과 지원,
특히 맹인 아버지에 의해 실현될수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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