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이단과 거짓에 대하여

첨부 1


교회의 역사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누가 사이비네, 누가 이단이네, 누가 거짓이네, 누가 진리(참)네’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러나 아쉬운 것은 ‘누가 이러이러하니 옳으네, 그르네’ 하며 타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권을 행사(?)한다는 사람들 중에 많은 경우가 기독교의 본질, 즉 성경의 본질을 놓고 이 성경의 본질을 기준으로 그런 말을 한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어떤 외적인 행동이나 활동이나 의식 등을 근거로 해서 정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교회에서는 모든 것의 진가(眞假)의 판단을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과 척도를 가지고 내려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외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그 무엇을 가지고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하나님의 정확한 척도를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그 지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참(眞)편에 서서 참(眞理)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1. 사이비. (사교)
어느 인간 한 사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한다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개인이나 집단을 사이비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자연법과 도덕법과 생명법(진리법) 밖에서는 살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소리이다.  자기 자신의 생사화복도 주장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장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 이단.
이단이라는 말은 기독교계에서 흔히 쓰는 용어로 일반사회에서는 잘 쓰지도 않고, 이단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단이란 한 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기독교의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정통교회에서 신앙으로 고백하는 7대 기본교리를 전부 또는 그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거부하거나 왜곡해서 가르치는 개인이나 집단을 말한다. 
기독교의 7대 기본교리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실존성(實存性)과 인격성(人格 性)과 완전성.(完全性) 
(2) 천국의 무한(無限) 완전성(完全性), 실재성.(實在性) 
(3) 하나님 외에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
(4)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5)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신인양성 일위(神人兩性 一位))로 동정녀(童貞女) 탄생, 사활(死活)한 분. 
(6)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사활했으니 예수 외에는 구주(救主)가 없다. 
(7) 택자(擇子)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중생,(重生) 성화,(聖火) 부활,(復活) 영생(永生)을 얻는다.

3. 참.(眞理)
교회에서 참(진리)을 찾으려면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의 참을 찾아야지 인간이 보는 참을 기준으로 해서 찾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참과, 인간이 보는 참은 본질과 본성적인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 보기에 아무리 선해 보이고, 참(진리)으로 보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옳다고 해도 인간의 것은 아담 타락 이후로 모두가 하나님의 기준에서 이탈된 이질적인 것이다. 
참(진리)은 창세 시나 말세 시나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해당되고 적용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쥐약 한 병을 먹으면 죽는다’ 할 때 이 쥐약 한 병을 남자가 먹던 여자가 먹던, 어린이가 먹던 노인이 먹던, 동양사람이 먹던 서양사람이 먹던, 옛날사람이 먹던 현대의 사람이 먹던 사람이 쥐약 한 병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해당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반적인 면에서 진리인 것처럼 성경(정확하게는 성경의 은밀계시)도 이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해당되고 적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 라는 말은 그 어느 시대나 지방이나 인종이나 풍습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은 진리이다.  그러나 성경구절을 근거로 대면서 ‘예수 믿으면 육신의 병이 낫는다’고 하게 되면 육신에 그런 병이 걸리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성경구절이 필요가 없는 것이니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그 말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성경이 계시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육신의 병을 고친 기록이 성경에 있고, 또 내가 그런 병이 걸렸다고 할지라도 나의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시건, 고쳐 주지 않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나의 할 일은 그 성경구절을 나의 영적인 면의 병을 고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깨닫는다면 영적인 병은 모든 인간에게 다 있는 것이니 그 말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진리는 영원히 변질 변동 변모 변형되지 않고, 썩지 않고, 불타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로 이 진리요, 예수님이 이 진리요, 하늘나라가 이 진리의 나라요, 참 자기 즉 예수를 믿고 인격과 성품이 주님을 닮은 나의 새사람이 진리화된 것이다. 
참 자기라 하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고 깨달아 나의 기존적인 옛사람이 변해 새사람(하나님의 성품을 입음)이 된 것을 말한다.  즉 진리로 자체화 인격화 사상화 실상화된 것을 말한다.  따라서 교회에서 교훈을 할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닮게 하고 천국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것은 참 진리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 예수님 천국을 자랑하고 소개하고 가르친다.
또한 진리는 죽음 저 넘어 신령계까지 영원히 행복된 효력이 있는 것이니 인간이 그 면에 대한 목적을 갖는 것은 참(진리)의 사상이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이 신령세계를 성경을 통해 바로 보고 깨달아 그 실상세계(實象世界)를 주장하는 것은 다 참(진리)이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영원적 궁극적 최종적 결과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려고 목적하신 곳이니 이 곳이 성도들에게는 실상세계요, 실물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을 현상(現象)이라고 하듯이 이 세상은 천국을 교훈하고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현상세계(現象世界)이다. 
현상해 놓은 사진은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실물의 사람이 오면 그 사진은 필요가 없게 되듯이 실상계인 천국이 도래하면 이 세상은 모두 불타 버릴 것이기 때문에 세상 자체도 진리가 아니고, 또한 그 세상을 목적적으로 가르치고 추구하는 것도 진리가 아닌 것이다. 
헤어져 있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려고 하지는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현상해 놓은 사진만 바라보며 즐거워한다면 그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천국을 사모한다는 성도가 언젠가는 불타 없어질 현상세계를 목적하고 소원하며 산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현상세계를 인간이 누리고 즐기며 살다가 죽으라고 만드셨다거나, 이 세상은 모두가 악한 것이니 무조건 멀리하고 죄악시하며 살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천국을 준비하고 건설해 나가는데 잘 이용하고 활용해서 훗날 천국에서 큰 자, 영광자가 되게 하려고 임시로 거처 가도록 하신 곳이라는 자세로 사는 것이 성도의 바른 삶이다. 
진리에 대해서는 이어서 다룰 거짓에 대해 말할 때 비교급으로 다루게 되므로 그 때 좀 더 명백히 알 수 있을 것이다.

4. 거짓.
‘참이다, 거짓이다’ 하는 것은 도덕성에 속한 것인데 여기서는 교훈적인 면에서 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참의 반대는 거짓이다.  이미 앞에서 다룬 참(진리)에서도 약간의 설명이 되었지만 성경은 인간이 죽음의 선을 넘어 궁극적 결과적 최종적인 세계에까지 영원한 효력성을 지닌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다.  신령계(하나님나라)가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의 성품(성화구원)이 영원한 것이니 곧 진리이다.
성경적인 거짓은 내가 세상에서 살다가 자연생명이 끝나는 순간에 천국에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고 이 땅에 버려 두고 가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만이 아니고 천국에까지 영원한 효력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다 거짓이다. 
이 거짓 속에는 일반적인 거짓말도 포함되고, 종교적인 거짓말도 포함되고, 뿐만 아니라 기독교계 안에도 예수이름을 가지고 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교훈적으로나 행동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소원목적적으로나 거짓이 들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직분은 내가 그 직분을 바르게 감당함으로써 자타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온전히 닮도록 하게 하려고 주신 것인데 그 목적에서 이탈돼 그 직분 자체로 교회에서 세도를 부리고 직분의 종류에 따라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직분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그 어떤 직분이나 감투나 간판이나 이력이나 업적이나 이런 것들 자체는 그 사람이 죽는 순간에 다 세상에 버려 두고 가는 것들이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할 수 있고, 오직 주님을 닮은 것만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므로 주님 닮은 그것만이 참이라는 것이다. 
천국에 가면 목사자리가 따로 있고, 장로자리가 따로 있고, 평신도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얼마나 많이 닮았느냐에 따라 주님의 보좌 우편에 앉기도 하고, 큰 자도 되고, 영광자도 되고,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자도 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 종들은 성경을 가지고 언젠가는 불타고 변하고 썩어질 것을 목적하고 소개하고 자랑한다.  한 마디로 세상과 세상 것은 영원한 것이 없는 것인데 그 세상과 세상 것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사람을(택자) 하나님과 같은 차원(존재적이 아닌 성분적으로)의 영원한 영광자로 만들고자 하는 것인데 이 목적에서 이탈된 언젠가는 없어질 세상과 세상 것을 자랑하고 소개하고 돋보고 소원하게 하는 것 모두는 영원하지 못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거짓인 것이다. 
성령은 참 운동(영원히 불타지 않고, 변하지 않고, 썩지 않는 운동)을 하지만 마귀는 성령의 운동과는 반대되는 임시적이고 세상적인 목적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운동인지 악령의 운동인지를 그 운동(일)을 하는 그 사람의 속의 목적관으로 분별하지 않고 방편이나 유형적으로 나타나는 활동 등으로 분별해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열매를 보아 참과 거짓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열매는 나타나 보이는 행동이나 유형적인 결과를 가지고 말하는게 아니다.  열매는 그 나무가 줄기로 통해 빨아올린 진액덩어리를 뭉쳐 놓은 것이고, 그 열매의 좋고 나쁨은 열매의 겉모양을 보고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그 열매의 맛, 즉 그 나무의 줄기가 빨아올린 진액덩어리(진액의 성분)로 알 수 있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열매는 사람의 속에 맺어진 성분, 즉 하나님의 성품으로 얼마나 바뀌었으며 얼마나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좋고 나쁜 열매(신앙)의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흔히들 말하기를 ‘열심히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지 너무 꼬치꼬치 파고들고 주의 종의 말에 자꾸 의심을 가지면 은혜를 못 받는다’ 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교회를 파괴하고 예수님을 깎아 내리기 위해 그러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해당이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에 대해 보다 더 바로 알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그런 궁금증을 품는 것을 마귀의 술책에 빠져들었다는 등의 말로 막아 버리는 것은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미 마귀의 고등수법에 걸려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귀는 성경을 가지고 분별 구별해 들어가면 결국 자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분별하고 구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성경구절적으로도 ‘거룩하라, 온전하라, 자라라, 싸우라, 닮아라’는 등등의 말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을, 참과 거짓을 구별을 하지 않고 어떻게 알 수가 있겠으며, 그런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따를 수가 있겠는가? 
성경에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시리라, 너를 크게 해 주리라, 첫째가 되게 해 주겠다, 오래 살게 해 주겠다’는 등등의 말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신령세계까지 염두에 두고 하나님 당신이 계시는 그 곳을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과 함께 영원히 누리며 살게 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겠다는 그것을 목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데 이 목적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그 세계에 대한 주장이 아니고 언젠가는 불타 없어질 임시계 현상세계에서 복 주고, 첫째가 되게 해 주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에 목적적으로 붙여 말을 한다면 이런 말은 영원적 궁극적 목적적 결과가 없는 말이 되므로 그 말대로 이 세상에서 실현이 되건 안 되건 그 말은 거짓말이 된다.  설령 이 땅에서 그 말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내가 죽으면 이루어진 그 세상 것은 천국에 가지고 가지 못하고 이 세상에 다 버리고 갈 것이기 때문에 거짓인 것이다.
또한 그런 말을 듣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충성봉사하며 잘 믿어 나갔는데도 그 말대로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럴 경우 세상에서 잘 될 줄 알고 그렇게 믿고 나갔는데도 안 되니 그 자체로도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비진리적이고 육적이고 임시적이고 언젠가는 변질되고 바람불면 날아가고 지진 나면 무너지고 변동되고 넘어지는 현상세계의 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복으로 주장하고 가르치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예수 잘 믿어 세상에서 복 받아 잘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을 하는 교회는 사람이 많이 불어난다.  이런 것을 보고 안 믿는 사람이건 믿는 사람이건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와, 저 교회 개척한지 얼마 안 됐는데 빨리 부흥됐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참을 볼 줄 모르는 성도나 교역자들은 그것이 부럽고 돋보이고, 그것을 갖고 싶어 시기 질투가 나니 자연히 그런 사람을 뒤따르고, 그런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가게 된다.  말세가 되면 이런 거짓 종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예수님에게 ‘내 앞에 절 한 번만 하면 세상영광을 다 주겠다’ 라고 했는데 마귀의 이 수법이 오늘날 말세교회 안에 횡행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진리세계 실상세계 영적 세계 신앙세계에서 본질을 떠난 가르침은 거짓말이니 그런 곳에서는 신앙인격의 성장이 없고 사람이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잘 살고 못 살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체(인격성)가 망하는 것이다.  사람이 망했는데 부자면 뭐하고 돈이면 뭐하나?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인격성장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임시적 가치 판단을 가지는 것보다 영원한 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더 좋다. 
사람이 성경으로 못 고치면 다른 그 무엇으로도 못 고친다.  불교의 경전, 유교의 삼강오륜 등 이종교의 경전은 모두 ‘하라, 하지 말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속 중심이야 거짓의 사람으로 되어 있을지라도 그 경전의 글자대로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안 하면 된다.  그러나 성경은 글자대로 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네가 참 하나님의 인격의 사람으로 깨우침을 받고 만들어져라’ 이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교훈이요, 교회의 교훈이요, 성경의 교훈이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좋은 열매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도 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하게도 되고, 건강하게도 되고, 병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사건 환경 존재 마찰 충돌 대립 등을 교체시키는 것은 성도가 그런 것들을 통과하면서 성경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자체화 인격화 실상화 되어 내 속에 있는 천국에 가지고 가지 못할 임시적이고 거짓적인 세상의 찌꺼기들을 뽑아 내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 때 사람이 만들어지는데 목적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이 되길 걱정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요구해야지 하나님에게 나의 일을 도와 달라고 기도하고 떼쓰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의 일을 내 요구대로 도와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아닌가?
거짓 종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성문적 교리(기독교 7대 기본교리)는 받아들이면서도 신앙을 세상과 세상 것, 즉 거짓적인 것에다 붙이기 때문에 진리와 거짓에 대해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비진리적 이질적인 교훈인지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교회에서 경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단집단인데 사실상 많은 성도들이 이단에 미혹돼 빠져 들어가는 것은 그 누구의 책임이냐를 따지기 전에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서 밝혔듯이 ‘거짓이 이단을 몰고 온다’고 했는데 그런 이단집단에 빠진 사람들은 그 이단에 빠져 들어가기 전에 정통교회에서 이미 거짓적인 신앙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단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니 그만 쉽게 이단에 빠져든 것뿐이다. 
사실 이단에 대해서는 몇 시간만 투자해 성문적 교리(기독교 7대 기본교리)를 배워 둔다면 초신자라도 쉽게 분별해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거짓적인 성분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가진 신앙이 거짓적인 신앙인 줄도 모르고 그 거짓을 참으로 알고 열심을 내기 때문에 그 열심을 내면 낼 수록 더욱 더 거짓적인 인격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그렇게 되면 이단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아닌 말로 성경적인 바른 깨달음과 신앙실력이 있어서 이단에 빠져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목사님이 이단은 집안에 들이지도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 이단과 대화할 기회조차 없어서 빠져 들어간 것이 아니지 만일 그들과 만나 신앙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만 있다면 그들에게 속아넘어가는 것은 자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이단과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단에 빠져들어 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신앙인격의 성장은 안 되는 것이다.  실력으로 싸워서 이긴 것과, 겁이나 미리 피해서 당하지 않은 것과는 절대로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성문적 교리 면을 중심으로 말을 했는데 문제는 내가 성문적 교리적으로는 이단 짓을 하지 않는다 해도 신앙성분적인 면에서 추구하고 목적하는 것이 사이비성 이단성 거짓성이 얼마든지 들어 있기 때문에 성분적인 면에서 이질적인 신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성분적인 면에서 진리가 아닌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이단 짓, 거짓 짓을 하면서도 남만 손가락질하다가 그들과 함께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성문적 교리적인 면으로도 바르게 깨닫고, 그 깨달음을 삶의 신조(信條)로 삼고 살도록 가르쳐야 함은 물론 이거니와 거기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성도 각 사람이 바른 신앙교리를 바탕으로 신앙성분적인 면에서 자기 속의 참(진리)에서 빗나간 사이비적이고 이단적이고 거짓적인 성분들을 발견하고 참을 받아 채우고 참이 아닌 거짓적인 것들은 버리도록 하는 면에 목적을 두고 가르쳐야 할 것이며, 이것을 목적으로 모든 사역이나 활동 등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단이나 거짓을 잘 연구하면 거짓에 빠지지 않고 참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더 쉽고 옳은 방법은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에 이 진리 하나만을 정확히 알면 진리가 아닌 것은 다 거짓이므로 거짓이 어떤 수단 방법으로 나에게 온다고 해도 절대로 거짓에 속아넘어가지 않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단을 연구하고 순교의 정신으로 이단을 척결하려고 뛰어다니는 것보다 참(진리)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며, 이왕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바에야 거짓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보다 참을 바로 가르쳐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거짓이 이단을 몰고 온다’고 했으니 이는 이단보다 거짓이 더 무섭다는(교활하다는)뜻이다.  즉 이단과 거짓은 이름만 다를 뿐이지 질은 같은 것인데 이단은 표면만 보아도 쉽게 구별이 되지만 거짓은 사람 속의 사상과 정신과 소원목적들을 분별해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거짓이 이단보다 더 무섭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단을 때려잡는데는 신경을 써도 거짓적인 신앙에 대해서는 때려잡기는 커녕 거짓성분적인 신앙을 성도들에게 넣어주고 있고, 그 거짓적인 것을 얼마나 많이 이루느냐에 따라(그들은 그것이 거짓적인 것이 아닌 진리인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신앙의 정도를 가늠하고, 명예와 간판과 권세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거짓적인 가르침에 미혹당해 주님 닮는 일(성화구원)에 잘 이용하라고 자기에게 주신 시간 건강 젊음 재능 물질 은사 등을 거짓적인 것을 이루는데 허비해 사망건설만 하여 자기의 영광된 미래를 영원히 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