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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유에는 대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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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산은 자유이다. 이 말은 자유가 프랑스의 근간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교통 법규보다 길을 건너는 사람의 자유가 우선한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있는 길거리에 차들이 홍수처럼 뒤엉켜 흐르지만 이를 규제하는 교통경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질서를 찾는 모습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어찌 보면 다른 차에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요령껏 상대방 차를 비집고 빠져나가는 모습 속에서 프랑스의 자유를 본다.

이는 획일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미국식 교통시스템에 익숙한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 움직이는 이런 프랑스의 자유로운 모습이 오늘의 프랑스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이 자유정신이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침공 속에서 나라를 지킨 레지스탕스 운동의 원동력이었고 오늘날 인권운동과 문화운동,그리고 사회 각 분야의 보장제도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들의 자유는 무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피의 대가가 있었다. 원래 프랑스에는 50만명에 달하는 특권층이 2700만명의 평민을 지배하면서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모든 재정은 부담하면서도 자유가 억압된 채 살아가야 했던 평민들은 자연히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계몽사상과 미국의 독립은 사회 개혁 욕구에 불을 지폈고 왕정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촉발된 국가적 재정 파탄은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과 반목은 민중 봉기로 이어졌고 요원의 불길처럼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나가 왕정이 붕괴되면서 자유와 평등이 기초를 이룬 오늘의 인권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프랑스 민중은 애국자의 피는 자유의 나무의 씨앗이라고 한 토머스 캠벨의 말을 맛보게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피의 대가로 얻어낸 프랑스의 자유 역시 불안전하다는데 있다. 가난한 사람은 역시 가난하고 억눌린 자는 역시 억눌린,불완전한 자유가 바로 오늘의 프랑스를 몸살을 앓게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만족시키는 참된 자유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찾으려고 사회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그렇지만 시대마다 시도된 자유의 추구는 이 세상에 참된 자유가 없다는 사실만 입증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참 기쁨과 만족을 주는 참된 자유는 없는 것일까?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에서의 해방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참된 자유는 무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참된 자유는 우리를 얽어매는 죄와 사망의 줄을 끊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어진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참된 자유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은 사방에서 억압을 당해도 결코 억압되지 않는 은혜를 날마다 맛보며 산다.


길자연<왕성교회 목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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