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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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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육을 강조하지 않다보니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 자체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필자가 신학대학에 다닐 때만해도 학생들 사이에 꽤나 회자화가 되었던 한자숙어였다.

쉽게 말하면 열숟가락의 밥을 모으면 한그릇의 밥을 만든다는 말인데 우연히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우리 방에서 현실화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45년이 지났음에도 그때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각인되어 있어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당시 같은 방에 기거하고 있던 동료가운데 시골에서 올라온 나이가 40에 가까운 L학우가 있었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 동료들이 식사하러 간 사이에 혼자 문을 안으로 닫아 걸고서는 식당에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처음엔 동료들 사이에 영성(靈性)에 치중하는 모범신학도인 것으로만 알고 모두들 그의 생활에 부러움과 다른 한편 우리 모두는 그 친구가 추구하는 영성생활에 못 미치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문을 닫아 걸고 굶으며 기도하고 있는 동료가 식권 매입할 돈이 없어 금식 아닌 억지 금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늦게나마 동료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던 중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우들이 L학우 몰래모여 의논한 결과 우리 선조들의 생활에 보편적 진리로 적용해 빛을 발했던 십시일반 운동을 전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은 당장 다음날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점심시간에 L학우를 설득해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연장자인 필자가 잘 이야기 해 함께 식당에 데리고 가서 빈 밥그릇 한 개를 가져다 놓고 동료 10여명이 식권을 주고 타온 밥을 많이도 아닌 문자 그대로 한 숟가락씩 덜어내 모았는데 모두들 동료의 사정을 생각하고 덜어내는 손길들이라 후하게 한 숟가락씩 덜어내서인지 돈내고 밥먹는 우리들의 밥그릇보다 얻어먹는 동료의 밥그릇에 담겨있는 밥이 두 배나 족히 되었다.

이렇게 모두들 친구의 점심을 위해 한 학기동안 내내 실행을 했는데 모두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주고도 오히려 즐거움을 누렸던 경험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내 마음속에 즐거운 추억이자 보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지금도 신학교 기숙사에는 식권이 없어 점심을 굶는 신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지만 50여년 전보다는 그 사정이 많이 다르리라 생각된다.

당시는 6.25 전쟁이 멈춘 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고 국가적으로도 오늘날처럼 경제가 넉넉하지 못한 때여서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을 때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기숙사 다른 호실에도 식권 살 돈이 없어 점심을 거르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가만히 앉아 친구들의 호의로 빈그릇에 가득 채워진 밥을 먹는 동료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내 밥그릇에서 덜어낸 한 숟가락의 밥으로 인해 내 밥그릇은 줄었지만 친구를 돕는다는 기쁨 때문에 오히려 가슴 뿌듯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밥 열 숟가락이 쌓인 밥그릇은 여러 학우들의 정성이 담긴 사랑의 밥그릇이어서인지 보기에도 그 밥그릇이 동천에 휘영청 높이 걸린 보름달 같이 보였다. 십시일반이 친구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위력을 나타낼 줄은 내가 철이 들때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나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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