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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통밀빵 신앙과 감시견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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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의 밑바닥이 어떤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신앙의 밑바닥은 현세적인 축복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 그래서 영생을 소유했다는 것이 신앙의 밑바닥이다. 밑바닥이 부실하면 상황에 따라서 흔들린다.

구원, 천국, 영생의 밑바닥을 잘 다지지 않고 건강, 물질, 사회적인 기반, 인간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면 그것들이 만족되지 않을 때 그 허약함이 드러나게 된다. 외관이 아무리 화려해도 밑바닥이 부실하면 무너질 것이요, 외관이 보잘 것 없어도 밑바닥이 탄탄하면 든든히 설 것이다.

안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그녀의 외관은 비참했다. 그러나 그녀의 밑바닥은 참으로 탄탄했다. “과부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2:37). 그녀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낙으로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리는 것을 낙으로 살았다. 이것이 밑바닥 신앙의 원형이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이것이 밑바닥 신앙이요, 종말론적인 신앙이다. 밑바닥 신앙은 영생이 밑바닥에 깔려 있으니 다른 것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신앙이다. 종말론적인 신앙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이요, 또한 개인적인 죽음의 종말을 항상 기억하는 신앙이다.

신앙의 밑바닥을 다지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다면 둘째로 중요한 것은 성경말씀을 바르게 섭취하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춧가루를 확 푼, 뜨거운 매운탕을 후루룩 먹으면 아주 살 맛이 난다. 그러나 거의 가공하지 않은 통밀빵을 꼭꼭 씹어서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도 일미다. 조미료를 팍팍 친 판매식보다는 조미료가 안 들어간 가정식이 몸에 더 좋고 불에 태운 화식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생식이 몸에 더 좋다.

생선회를 진짜로 잘 먹는 사람은 쌈장이나 상추 없이 그냥 간장에 슬쩍 찍어 먹는다. 그래야 회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성경말씀도 마찬가지다. 짜고 맵고 뜨겁고 불태운 부흥사 설교를 많이 먹어 본 사람한테는 통밀빵 설교가 너무 밋밋하고 졸립다. 그러나 사실은 통밀빵 설교가 영혼에 더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생식이다. 성경말씀을 통째로 쭉 읽어나가는 생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영적인 당뇨병에 걸리는 사람이 자꾸 많아지기 때문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애완견 신앙이 아니라 감시견 신앙을 갖는 것이다. 애완견 신앙은 아무한테나 애교를 부리는 신앙이다. 우리 신앙이 이 세상의 안 좋은 것들과 영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주인에게만 충성하고 이 세상의 안 좋은 것들을 향해서는 짖을 수 있는 감시견 신앙을 가져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르다고 비난해도 성경이 옳다면 옳다고 짖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오직 주님만 의식하는 것이 감시견 신앙이라면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은 애완견 신앙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한 애완견 신앙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올무에 걸리고 말았다(삼상15:24-26). 누구한테나 꼬리치는 애완견 신앙으로는 이 험난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오직 주님만 의식하는 감시견 신앙으로 무장해야 한다(시146:3-5).

- 김종춘 목사(www.dreamel.com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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