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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독교 복음과 손톱 스타일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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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13]

내한선교사들은 초기부터 한국교회를 순수한 영적 토대 위에 세우려고 노력했다. 이에 그들은 기독교 복음과 서구문명이 혼돈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애를 썼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이 서구 문명의 소개가 아니라 영적 기독교의 전파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무엘 마펫(Samuel Moffet)은 “조선 복음화 정책과 방법”이라는 논문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복음메시지의 핵심은 단순한 도덕 개혁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서구의 사상, 관습, 발명품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사실 동양의 많은 사상과 관습이 서구 세계의 이상한 개념이나 관습보다 훨씬 더 영적인 사상에 가까우며, 사구문명의 일부로 간주되는 많은 것들의 도입은 영적 생활에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우리의 사명은 영적 기독교의 소개이지 서구문명의 소개는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단순한 도덕의 개혁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에 있음을 분명히 인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는 이땅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노동에 관한 생각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노동을 천하게 생각했다. 이에 대해 게일(James Gale)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미국인은 제 아무리 게으름을 피우게 되더라고 노동은 고귀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다. 아무튼 이론적인 면에서 어린이들은 노동의 존엄성을 배운다. 그러나 조선에는 그와 정반대되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노동은 ‘일’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의 2차적인 의미는 손해, 손실, 재난, 불행이고, 이런 생각은 모두 일이라는 말과 관계 깊다. 따라서 조선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관습의 논리에 의해서 가장 고귀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다.”

더구나 반상의 구별이 분명했던 조선사회에서 노동은 양반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양반이 일한다는 것은 체통을 손상시키는 짓이며,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신분이 참으로 고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조선의 양반들은 손톱을 길게 기르고 잘 손질하여 광택을 냈다. 이것은 그들이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가면서 한국인들의 사고에 변화가 일어났다. 노동 천시의 풍조를 멀리하고 노동에 대한 성서적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의 신성을 강조하는 서구적 풍토에서 자란 내한선교사들의 기여가 컸다. 당시 서구인들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 평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 길모어는 노동의 가치가 이땅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있을 것을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조선 사람들이 노동의 귀중함을 깨닫게 될 날이 이를 것이다. 지금 조선에 살면서 조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외국인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서는 노동을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은 없다. 동양에서처럼 값싸고 하인이 많은 사회에서는 게으른 천성을 합리화시키고 매사를 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서구문명의 번영과 발전이 오늘날 앵글로색슨족이 세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것은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정력과 노동을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양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양반으로서의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 노동의 개념을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외국인들을 조선 사람보다 우월한 지위에 놓이게 해 준 문명의 우수성을 유지하면서 그러한 문명의 우월성은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독교 복음은 이 땅에 길모어의 꿈을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한 예로 신동운이라는 양반이 전북 부안의 관동마을에는 살고 있었다. 그는 가늘고 긴 손톱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이곳을 순회하는 남장로교의 테이트 선교사로부터 성경을 구입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은 후 그는 신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이듬해 봄에 테이트 선교사가 다시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학습교인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테이트 선교사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가 세례교인이 되어 있었다.

그때 테이트는 그의 손톱이 짧고 추하게 변화된 것을 보았다. 그는 빈둥거리며 사는 귀족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활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신경운은 별다른 변화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선교사로부터 구입한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성경에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은 안식일로 지키라’는 말씀이 담겨 있었다. 신경운은 이것을 그리스도인은 빈둥댈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빈둥거리는 양반노릇을 청산하고 충성된 청지기 노릇을 감당했던 것이다. 기독교 복음이 양반들의 손톱 스타일을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선교사들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인들의 결점을 나태함과 노동 의욕의 부재라고 보았다. 한 예로 게일은 조선인들은 노동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며, 일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본다고 지적하고, 조선인들의 게으름은 미래를 개척하기 보다는 과거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교육 탓이라고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한 선교사들은 노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그들은 그 모델을 성서에서 찾았는데, 목수 요셉이 대표적인 노동의 모델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예수님도 목수의 아들이었음을 강조하여 설명하였다. 예수님의 손에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못 자국 뿐 아니라 아버지 요셉을 따라서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을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초기 한국 교인들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였다. 그들은 더 이상 고운 손이 기독교인들의 자랑거리가 아니며, 주님을 섬기는 자세로 주어진 삶을 일구어내는 거친 손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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